수액 (樹液) :  겸손

   모든 나무에는 둥치를 둘러싼 껍질이 있으며, 뿌리에는 새 영양분을 취하는 수액이 있다. 그 수액은 껍질위에 진으로도 나타난다. 이 모든 것은 나무의 생명을 유지시킨다. 수액 없는 나무는 살 수가 없다. 둥치와, 껍질과 수액, 이 세 가지는 수도생활의 근본 요소들로서 성 분도께서는 성규 5,6,7장에서 이에 상응한 요소들을 설명한다.

   그 중에 둥치는 중심 요소로써 수도자를 강인하게 만드는 순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순명은 군대의 것과는 달리 겸손의 수액이란 것으로 일관하는 것이다. 죄인이지만 하느님 사랑에 의해 생명을 유지해 나가고 있음을 인식하는 자아를 봄으로써 무엇보다 자신을 겸손케 만든다.  여기서 ‘자신이 죄인임을 의식한다’는 것은 우울증에 빠져있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겸손에 아무 유익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는 사실상 아무 죄가 없었어도 매우 겸손하셨다.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미소함을 인식한 동시에 하느님으로부터 그래도 사랑받고 있음을 알았기에 겸손하셨다. 하느님 사랑이 넘치도록 주어졌음을 아는 수도자는 미소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로 부르시어 우정을 나누시고, 그에게 당신 자신을 열어 보이시기를 원하심을 안다. 하느님은 이 가난한 수도자인, 인간 안에서 기쁨을 가지신다.

   우리 모두는 죄인들이다. 언제 가장 심각한 죄인들인가? 그분이 우리에게 쏟으신 사랑이 상처받을 때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낯선 사람에게서 받은 수모나 비방보다, 친구로 여기던 사람으로부터 감정 상하는 말을 들었을 때 더욱 마음의 상처가 깊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주신 이 성소를 마치 그분의 무정한 처사로 여겨 행동하게 될 때 우리의 죄는 그분 앞에 심각한 것이 된다. 하느님을 기쁘게 하기보다, 우리는 우리의 미소한 것들에 얽매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계속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신다.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이러한 비하는 수도생활의 둥치에 영양분을 주는 수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