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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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예수성탄 대축일 낮미사: 인 끌레멘스 원장 신부 07-10-14 21:52:1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662   
성탄 대축일 낮미사 (2004년)

우리는 어제 밤, 칠흑처럼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한 아기의 탄생을 지켜봤습니다. 오늘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 안에, 이 땅에, 우리 인간의 역사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그것도 한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강생의 신비, 또는 육화의 신비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경축하는 이 성탄은 2000년 전 아기 예수님이 베들레헴 마구간에 탄생하셨다는 사건만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오늘 미사 본기도에서 주례자이신 아빠스님의 입을 통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인간에게 고귀한 품위를 주시고 더욱 새롭게 창조하신 하느님, 성자께서 사람이 되셨으니, 저희도 하느님이신 성자를 닮게 하소서.” 이 짧은 본기도에는 세 가지 차원에서 성탄의 참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선 본기도는 “인간에게 고귀한 품위를 주셨다”고 고백하면서, 성탄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창조와 연결시킵니다. 첫 창조 때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셨으며, 특히 우리 인간을 당신 모상으로 창조하심으로써 (창세 1,1-2,4) 우리 안에 하느님을 닮은 본성을 넣어주셨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첫 조상은 하느님께 거역하는 죄를 지음으로써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죽음의 운명에 처하고 우리의 고귀한 품위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때가 차차 당신 아드님을 보내셨으며, 한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갈라 4,4) 하심으로써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십니다.


그래서 본기도는 둘째 단계로 넘어가서 우리 시선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곧 파스카 사건을 향하도록 합니다. “인간을 더욱 새롭게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강생의 신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완성되는 파스카 사건을 내다본다. 그래서 바울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천한 몸을 당신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필립 3,21)라고 힘주어 말했던 것이다. 따라서 성탄의 신비는 새로운 창조인 파스카 신비를 미리 선포하고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


이제 마지막 차원으로 본기도는 “성자께서 사람이 되셨으니, 저희도 하느님이신 성자를 닮게 하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육화와 우리의 희망이 서로 만납니다. 사실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 안에서 하느님을 우리와 멀리 떨어진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신 하느님으로 알게 되었다 (마태 2,23). 그렇지만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만이 아니십니다. 성탄에서 우리는 우리의 인성을 취하신 하느님이신 성자를 기념하고, 동시에 우리의 인성이 성자의 천주성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기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의 탄생을 통하여 우리의 품위를 되돌려주셨습니다.


성탄을 경축하는 우리 모두는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오늘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탄생 안에서 우리 각자를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거행하고 있는 이 성탄 전례는 우리의 참된 인간성의 탄생을 경축하는, 바로 우리 모두의 생일잔치입니다. 우리의 모두의 생일잔치를 성대하게 열기 위해서 여러 형제들이 애를 참 많이 썼습니다. 노래를 연습하고 초를 장식하고 성당을 청소하고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구유와 성탄 장식을 꾸미는데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이 기쁜 생일잔치에 소외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축하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어린 아이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하느님의 순수한 보석이고 보물입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보석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우리 안에는 방치되고, 매 맞고, 기가 질려 마음의 상처를 입은 하느님의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같이 사는 사람들한테서 이해를 받지 못해서 울다가 울다가 끝내는 지쳐버리고 자포자기하고만 불쌍한 우리 자신을 상징하는 어린 아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더 아픈 것은, 지쳐버리고 자포자기해서 돌처럼 단단해지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우리 자신 때문에 더 아픕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안타까운 눈으로 마음이 찢어지는 심정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속 시원히 드러내지 못해서 더 고통스럽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제2독서인 히브리서의 저자와 요한 복음사가는 상처 입고 아파하는 우리 모두에게 힘주어서 말합니다. “이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요,육신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거처하시는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오늘은 빛의 날, 광채의 날입니다. 하느님의 빛 자체이신 예수님을 통해 웅크리고 있는 우리 내면을 바라봅시다, 빛을 통해 우리 자신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봅시다. 그러면 우리를 감싸고 있는 어둠이 사라지고 새로운 우리 모습, 하느님의 어린아이인 우리의 참된 모습, 방긋 웃는 우리의 참된 모습이 찬란히 드러날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는 하느님의 이 보물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이웃 안에 깊이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을 아기 예수님의 빛 안에서 바라보고 만끽합시다. 그리고 이 보물을 오늘 미사 봉헌 때 아기 예수님께 겸손되이 예물로 봉헌합시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이 보물을 받으시고 참으로 기뻐하실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랑이 있습니다. 포기하지 맙시다. 오늘,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거쳐하시고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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