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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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대림 2주일(가해) 강론 - 본업에 충실하자!: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4 21:50:1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219   
대림 제2주일 강론(04. 12. 4)
제1독서: 이사 11,1-10
제2독서: 로마 15,4-9
복 음: 마태 3,1-12
본업에 충실하자!

얼마 전, 자영업을 하는 한 주부가 쓴 글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거, 당신들은 아는가?” 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그분의 눈물겨운 투쟁기였습니다. 요즘의 경기침체로 인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려운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경매로 쫓겨나는 사람, 공과금 체납으로 전기가 끊겨 어둠 속에서 사는 사람, 가스가 끊겨 난방이 안 되는 차가운 방에서 살고 있는 사람, 매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여기에 속한다고 했습니다.

그분의 사연은 대충 이러했습니다. 도시가스와 전화는 장기 미납으로 이미 끊긴 상태이고, 이달까지 전기요금을 내지 않으면 전기마저 끊길 상태라고 하였습니다. 방법을 강구하다 어렵게 마련한 돈이 60만원, 그러나 밀린 연체료를 지불하려면 턱없이 모라라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정사정하여 일단 급한 불을 끄고 나니 수중에 달랑 3만원이 남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완불은 아니었지만, 3가지를 해결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넘어지면 일어나리라! 또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리라! 그래도 넘어지면 두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씩씩하게 닦고 다시 또 일어나리라!”

제게는 마치 전선에서 온 편지 같았습니다. 그만큼 간절하고 긴박한 삶의 현장이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이 사연은 왠지 제게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일반 서민들이 처한 절박한 상황이기에 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이 글이 소개된 후 불과 4일 만에 673명 이상의 사람들이 격려와 도움을 주기 위해 작은 정성들을 모은 것이 420만원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어려운 사람들끼리 나누는 훈훈한 인정이 묻어납니다. 삶의 최전선에서 분투하는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아름다운 사연과 따뜻한 인정은 우리 삶에 힘과 용기를 더해 줍니다. 아울러 잠자던 의식을 다시 일깨워줍니다.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거, 당신들은 아는가?” 이 질문은 바로 제게 던지는 질문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글을 접하고서 이런 물음들이 계속해서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나는 왜 이곳에 있는가? 삶의 후방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병사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베네딕도 성인은 자신의 규칙서에서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친구여, 그대는 무엇을 위하여 왔는가?”(RB 60,3) 이 질문은 삶의 목표가 흐려지려고 할 때 저를 다시 각성시켜주는 화두와도 같습니다. 나는 왜 수도원에 왔는가? 인간적 욕구 충족이나 개인적 이상 실현, 혹은 자기 계발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을 추구하려 했다면 사회에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순수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하느님만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가끔 우리 수도자들의 포기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는 갖지 못하기 때문에 소유하지 않는 것도 또 누릴 수 없기 때문에 불편하게 사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처지가 못 되기 때문에 안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 능력이 없어서 독신으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할 수 있음에도, 누릴 수 있음에도, 또 소유할 수 있음에도 자유로이 이 모든 것들을 포기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더 높은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의 포기는 구속이 아니라 자유입니다. 그것은 수행자의 멋이요 특권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좁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모두가 구원을 바라지만 그것을 성취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왜냐하면 고독한 길, 바보의 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길은 분명 쉽지 않습니다. 이 길의 가치를 확신하는 사람만이 이리로 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정도(正道)가 아니라면 남들이 모두 간다 하더라도 따라가지 않을 용기와 자유로움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는 내 삶의 중심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지금 이 곳에 있는지, 무엇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는지, 또 나의 참된 관심사는 무엇인지 진지하게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수도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 원하는 일을 앞세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하느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자기를 떠난 사람입니다. 따라서 사사로운 관심사를 추구하는 것은 수도정신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본업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는 일입니다. 수행을 통해 자기를 정화하고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해 나가는 일입니다. 이 일은 수도자로서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근본 이유입니다. 만일 우리의 시선이 하느님을 향해 있지 않으면, 또 우리의 관심이 하느님을 찾는 일에 있지 않으면, 우리가 이 후방에 있을 아무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부업에 너무 신경 쓰고 시간을 쏟다보면 자연히 본업이 부실해지기 마련입니다.

요즘 들어 저는 개인적으로도 또 공동체적으로도 영성의 빈곤을 체감합니다. 만일 우리에게서 영성생활에 나아가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디서 우리 삶의 존재이유를 찾겠습니까? 공동체 안에 내적인, 영적인 깊이 없이 그저 얄팍한 기교와 인간적 처세만 늘어간다면 교회의 희망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영성은 자동차를 움직이는 엔진과도 같습니다. 엔진이 없거나 고장 나면 자동차는 빈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성이 없는 공동체나 개인은, 내적 생활의 질서를 잡고 깊이를 추구해 나가지 않는 공동체나 개인은 영적인 동력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삶의 균형과 질서가 무너지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힘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토마스 머튼의 견해대로 활동은 관상의 결과로 나타날 때 참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활동과 행위는 복음정신과 수도정신에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 삶의 조화와 질서를 해치고 수도정신에 어긋난 것들은 과감히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선교는 활동이라기보다는 일차적으로 삶의 증거입니다. 누구도 자기가 소유하지 않은 것을, 또 맛보지 않은 것을 남에게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베네딕도의 참된 제자라면, 먼저 우리의 소명과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영성과 삶에 걸맞은 방법들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올바른 투신이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세상 앞에, 또 우리 자신에게 좀더 솔직하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과연 하느님의 뜻과 그분의 영광을 찾고 있는지, 내 뜻과 내 영광을 찾고 있지는 않은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온갖 허영심과 인간적인 욕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계획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면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입니다. 좋다고 모두를 잡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것들을 선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만일 어떤 가정이나 공동체가 외적으로 아무리 번성하다한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희망을 주지 못하는 둥지에는 새들이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지향하는 가치와 방향이 불분명한 공동체 역시 구성원들에게 혼란만을 가중시키게 됩니다. 결국 자기 자리를 찾아 떠나가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일이나 업적보다 사람이 우선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사람을 우선시하셨습니다. 당신 양떼에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그 사람의 능력이나 효용가치가 아닌 사람 자체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 어떠한 것도 사람보다 소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공동체 내부로 돌려 함께 사는 형제들에게 좀더 관심과 주의를 기울일 때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문제들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 나가야 하리라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촉구합니다. 회개는 하느님께 돌아서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우리 존재와 삶의 중심에 놓고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 본업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후방에서 우리가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회개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특별히 이 은혜로운 대림시기를 맞아 우리 삶을 되돌아보고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잡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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