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연중 제27주일이고, 군인주일이기도 합니다. 군 사목을 위해 헌신하는 군종 신부님들과 군종교구를 후원하는 날입니다. 우리 수도원에서는 오늘 뜻 깊고도 기쁜 일이 있습니다. 오늘은 사랑하는 이 부루노 수사님이 50년전 오늘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였던,, 첫서원을 하신 날입니다.  

수사님께서는 1942년 9월 25일 북한의 덕원 수도원으로 입회하셨고, 49년 덕원 수도원이 공산당에 의해 폐쇄되고, 수도자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남한으로 피신을 왔습니다. 1953년에 왜관에서 수련기를 시작하셨고, 1954년 10월 3일 첫서원을 하셨습니다. 입회후 무려 12년 동안 지원기, 청원기, 수련기를 보내시며,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지만 수도자의 길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하느님께 의탁하며 수도생활을 계속하셨습니다.

오늘 독서들과 복음을 읽으며, 믿음에 대하여, 우리의 충실성에 대하여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약속과, 우리를 대하시는 하느님의 충실성에 대하여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1독서 하바꾹 예언서의 말씀은 한마디로 “성실함”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갈대아인들에 의하여 공격을 받고, 온갖 고초를 겪던 때였습니다. 더 이상 하느님과 그 분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맺었던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에 하바꾹 예언자는 하느님께 탄원하였고, 그 분의 응답을 들었습니다.

“주님,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데 언제 들어주시렵니까? 이 억울한 일 언제 풀어 주시렵니까? 이 고생살이 정말 못 본 체하실겁니까?” 이렇게 울부짖는 하바꾹 예언자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정해진 때를 기다리고 있다. 늦어지는 듯 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지체하지 않는다. 의로운 사람은 성실함으로 살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누구나 알아보도록 판에 새겨두어라.”

우리는 서원을 할 때 서원장을 작성하여, 제대위에 올려둡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대로 저를 받으소서. 그러면 저는 살겠나이다. 주님은 저의 희망을 어긋나게 하지 마소서” 하고 우리 자신을 봉헌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가 서원을 할 때 작성한 이 서원장은 바로 우리 개인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충실성과 나의 충실성이 만나는 자리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어디로 이끄실지 알 수 없지만, 하느님의 충실성에 의지하여 우리 일생을 맡기는 그 증표는 바로 오늘 하바꾹 예언자가 말하는 그 판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바꾹 예언자가 자신이 본 환시를 판에 기록하였듯이, 우리는 서원장에 우리를 불러주신 하느님의 목소리를 기록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 말씀도 믿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갖고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것이 여러분에게 복종할 것입니다.”

~~ 뽕나무가 뿌리째 뽑히지 않으면 우리는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도 없는가!!~~ 하고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예수님이 자신의 의도를 더 강조하기 위하여 다소 과장법을 사용하고 계시다고 이야기합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는 것은 믿음이 큰가, 적은가, 많은지 적은지 이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참된 믿음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세례 성사를 통하여 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우리 안에 뿌려졌습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사건입니다. 이 겨자씨가 우리 안에서 싹을 띄우기만 한다면,, 그리고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라기만 한다면 그 결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커집니다. 믿음을 갖고 끝까지 참고 기다린 사람에게는 신앙의 참 기쁨과 신앙의 위대한 승리가 주어집니다.

마르꼬 복음 11장 23절에 보면, “이 산더러 ‘저 바다에 빠져라’고 말하면서 제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되리라고 믿는 사람에게는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산이 바다속으로 빠지는 비현실적인 예를 드셨지만, 그 안에는 믿는 사람들이 의심없이, 굳은 신뢰심을 갖고 믿으면 하느님께서 들어주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신앙은 하루 아침에 다 자라버리지 않습니다. 많은 시간과 단계를 건너뛰어서 뭐가 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하루 하루 조금씩 자라납니다.

하루 종일 농사일과 양 치는 일로 수고한 종은 집에 돌아와서 주인의 음식 장만과 시중을 들고서야 비로소 음식을 먹고 쉴 수가 있습니다. 하루 종일 수고했다고 해서 주인이 고마워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종은 그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그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 수도자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주님이 하기를 원하시는 일을 우리가 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순간, ‘이 앞에 앉아 계시는’ 우리 수도형제들,,, 서원한지 10년, 20년, 30년, 40년, 50년, 그 이상되신.... 이 위대한 분들과 함께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보잘 것 없는 우리의 봉헌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찬미하는 이 공동체를 이루도록 하셨고, 9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 찬미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우리의 보잘 것 없는 믿음을 소중하게 받아들이시고, 이토록 놀라운 일을 보여주시는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합시다.

마지막으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하느님께서 주신 그 은총의 선물을 생생하게 간직하시오. 하느님께서 주신 성령은 우리에게 ... 힘과 사랑과 절제를 주십니다. 우리 안에 살아 계신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훌륭한 보화를 잘 간직하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