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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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 16주일(다해) 강론 - 한 가지 필요한 것: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4 21:45:4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022   
연중 제16주일 강론 (04. 7. 16)
제1독서: 창세 18,1-10ㄱ
제2독서: 골로 1,24-28
복 음: 루가 10,38-42
“한 가지 필요한 것 - 좋은 몫”

저희 공동체를 방문하신 여러분 모두를 환영합니다. 특별히 지난 금요일부터 수도생활 체험학교에 참가하신 젊은이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어느 공동체를 방문하고 또 방문객을 환대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고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져 있습니다.

베네딕도회 전통 안에서 손님환대는 아주 특별한 위치를 차지해 왔습니다. 베네딕도 성인은 수도원을 찾아오는 모든 손님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공동체는 손님을 맞이하지만 실제론 그를 통해서 방문하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손님 쪽에서는 공동체의 친절한 환대를 통해서 봉사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처럼 방문과 환대는 그리스도라는 선물을 주고받는 아주 중요한 행위입니다. 여러분은 저희 공동체를 방문하여 과연 어떤 선물을 받으셨습니까?

얼마전 어떤 수녀님이 자신의 체험담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방문했던 남자 수도원들에서 한결같이 물 한잔도 대접하지 않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각박할 수가 있냐는 하소연 섞인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분은 절에 가서 후하게 대접받은 것과 너무나 대조가 된다면서 우리 가톨릭의 폐쇄성과 인색함을 지적하였습니다. 참으로 부끄럽지만 한편 깊이 공감 가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일 수도 있습니다. 환대를 잘 못하면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놓치게 되고 또 그분을 증거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럼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오늘 복음은 이에 대한 의미 있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마르타와 마리아는 주님을 맞이하는 두 가지 태도를 대변합니다. 마리아는 주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반면,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을 드느라고 분주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불평을 털어놓습니다. 언뜻 보면 마르타의 불평은 정당해 보입니다. 바빠 죽겠는데 눈치코치 없이 넋 놓고 앉아 있는 동생이 얄밉기까지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르타, 마르타, 많은 일에 걱정하며 부산을 떠는구려.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했고 빼앗기지 않을 것이오.”(10,42)

마르타는 물질적인 면을 돌보았던 반면, 마리아는 영적인 면을 돌보았습니다. 마르타는 갑작스레 도착하신 주님께 실제적인 봉사를 해드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는 주님과의 만남의 기쁨을 누리고 그분 현존과 말씀으로 자신을 풍요롭게 채우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결국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손을 들어주심으로써 영적인 것의 우선권을 강조하십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지향해야할 가치와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십니다.

물론 이 두 태도는 대립이 아닌 상호보완 관계에 있습니다. 분명 마르타의 봉사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잘못은 주님께 대한 ‘봉사’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일에 마음을 쓰고 걱정하는데’ 있었습니다. ‘일하는 데’ 몰두하다 보면 흔히 그 일의 동기와 목적인 ‘주님’을 등한히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빠지기 쉬운 위험은 소위 활동주위, 실용주의, 거대지향주의에 물들어 하느님 외의 것들에 더 집착하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무익하고 쓸데없는 일들에 시간을 덜 낭비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가치의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마르타는 물질적인 면에 치중하였지만, 마리아는 영적인 면에 더 가치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좋은 몫’을 택했습니다. 살아가면서 어떤 가치를 지향하느냐에 따라 인격형성도 되고 삶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물질적, 인간적 가치가 아니라 영적, 정신적 가치가 우리를 지배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마르타의 모습도 또 마리아의 모습도 있을 수 있습니다. 종종 전자는 인정받고 유능한 것으로 평가되는 반면, 후자는 비현실적이고 비생산적인 것으로 치부될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마리아의 일은 비생산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양적이고 능률위주의 가치 기준에 따라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 눈으로 보면 소위 일 잘하고 재능 많은 사람들이 위대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으로 보면 달리 보일 것입니다. 그분의 가치 기준은 판이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예수님의 눈으로 보고 평가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수도자들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세속적인 가치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향하는 사람이 더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는 마리아와 같은 비능률적이고 비생산적인 사람들이 절실한 때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유능하고 똑똑한 사람들은 넘쳐나는데 순수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품귀현상을 보이는 듯 합니다. 우리가 하는 많은 일들과 사업들이 만일 ‘필요한 한 가지 것’을 지향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물거품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추구해야할 ‘한 가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나에게, 우리에게 ‘한 가지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몇 주 전 한국에 진출한 카르투시오회 남녀 수도자들이 저희 공동체를 방문하여 안내를 한 적이 있습니다. 카르투시오회는 1084년 성 브루노에 의해서 설립되었는데, 가톨릭교회 안에서 가장 엄격하기로 소문난 수도회입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해 이런 말이 전해질 정도입니다. “Cartusia numquam reformata, quia numquam deformata”(카르투시오회는 개혁된 적이 없다. 왜냐하면 결코 변질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저한 포기와 엄격한 봉쇄의 삶을 통해 하느님을 찾는 일에 투신합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분들을 안내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참으로 세상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내적 깊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 미쳐 모든 것을 포기한 수행자의 순수와 열정이 묻어났습니다. 그분들의 취미는 기도요 묵상이고 특기는 단식과 고행인 듯 합니다. 그분들이 몸을 실고 온 교통수단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수녀 세 분과 수사 두 분이 트럭을 타고서 이동하였습니다. 제가 그들의 자가용을 두고 멋지다고 했더니, “monastic car” (수도승의 차)라며 웃어넘겼습니다.

우리 수도자들이 추구해야 될 일차적인 것들은 부단한 자기 수행과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바로 이러한 순수성에 도달하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다른 것들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인 것, 즉 ‘한 가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은 현실 생활의 필요에서 나오는 이차적인 것들입니다. 이는 마르타의 구체적인 봉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주님을 향하려는 마리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는 주님을 맞이하는 가장 좋은 몫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연 주님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습니까? 누가 아무리 일과 사업에 유능하다고 해도 그에게 순수함과 하느님을 향한 열정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교회가 아무리 많은 사업을 벌이고 교세를 확장한다 해도 복음적 순수성과 가난과 섬김의 정신을 상실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일차적인 관심사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단순히 외적인 활동이나 봉사에 있다면, 물을 공급받지 못한 나무가 말라 죽듯이 우리 역시 그렇게 쇠진해버릴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사, 우리의 주파수를 오늘 복음의 마리아처럼 오직 ‘한 가지 필요한 것’에 맞출 때, 주님을 제대로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희는 가장 좋은 몫을 택했다.’ 우리 모두 주님 보시기에 가장 좋은 몫을 택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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