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의 인간성 안에는 생명과 죽음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생명과 죽음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많은 철학이나 종교에서 생명과 죽음을 인간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시도를 봅니다. 이것은 생명과 죽음을 소유하려는 욕망의 표출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소유욕은 참으로 헛되고 헛된 일이고, 소유 자체는 바로 죽음입니다. 생명과 죽음은 우리 인간 손 밖에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특히 사부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우리는 생명과 죽음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속한다는 것을 알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참된 의미에서 우리 인간성을 형성하는 모든 것, 곧 생명과 죽음의 힘, 하느님의 은총과 우리의 인간적인 체험, 우리의 재물과 땅, 우리의 한계와 죄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셨고 당신 자신을 나를 위해 내어주신 분”에게 속합니다.

오늘 제1독서인 이사야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돌보듯이 어머니다운 사랑으로 하느님께서는, 죄를 지어 유배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십니다. “너희가 품에 안겨 귀염받으며 흡족하게 젖을 빨리라. 어미가 자식을 달래듯이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니.”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을 배반하여 그 죄 때문에 죽을 고생을 하는 것을 하느님께서 보시고는, 함께 아파하시고 당신의 자비를 먼저 베푸십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자비가 선물로 우리에게 베풀어졌습니다. 하느님의 선물 자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무상성의 신비, 공짜의 신비를 봅니다. 다시 말해서 선물의 신비를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고 예수님이라는 선물을 주신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자식처럼 위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이 선물을 마음 깊이 뼛속 깊이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더 나아가 나의 모든 것, 우리의 모든 것, 심지어 우리의 생명과 죽음도 그리스도께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또 이 받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온전히 내어놓게 됩니다.

이러한 선물의 신비에서 선교가 나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 일흔 명을 당신 복음의 증거자, “하느님 나라”의 사도로 파견하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우선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시오. 거기 평화의 아들이 있으면 그대들의 평화가 그에게 내리겠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들에게 되돌아올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는 하느님의 자비를 나눌 때 오는 서로의 친교와 일치를 말합니다. 예수님이라는 거저 받은 선물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입은 사람이 다른 사람과 자비를 나눌 때 하느님의 평화가 건설됩니다. 

그런데 오늘 제2독서에서 바울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말고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고, 더 나아가 예수님의 상흔, 에수님의 상처를 몸에 지니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 각자 역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예수님의 상흔을 지니고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 일상 삶 속에서 내 것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이웃한테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한다는 것은 참으로 우리 각자한테는 십자가요 상처가 됩니다. 제 자신도 살면 살수록 이 어려움을 절실히 체험합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와 상처는 우리를 죽이는 십자가요 상처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살리는 평화를 건설하는 십자가요 상처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온전히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이 되었습니다. 이 은혜로운 선물에 감사드립시다. 그리고 추수 일꾼으로서 우리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라는 선물을 우리 이웃과 나누어 평화의 건설자가 됩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대들 이름이 하늘 책에 적혀 있음을 기뻐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