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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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 12주일(다해):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4 21:40:3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759   
연중 제12주일(다해) - 서울 봉헌회 강론(04. 6. 20)

제1독서: 즈가 12,10-11
제2독서: 갈라 3,26-29
복 음: 루가 9,18-24

우리가 방금 들은 오늘 복음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수의 신원에 대한 질문과 그분의 운명에 대한 예고,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예수 추종의 전제 조건에 관한 내용입니다. 각 부분은 서로 다른 내용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긴밀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1. 예수의 신원에 대한 질문

먼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합니까?” 이에 대해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옛 예언자 등 다양한 대답들이 쏟아집니다. 이처럼 사람들 사이에 예수의 신원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 질문은 제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예수의 이 질문에 늘 용감하고 직선적인 베드로가 즉시 응대합니다. “하느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정답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도 실상 그리스도의 신비를 완전하게 알아듣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복음들에서는 베드로의 고백 후, 예수께서 당신의 수난 예고를 하시자 즉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여기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수의 신원과 제자들이 생각하는 그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확인하신 후에야 비로소 당신의 운명을 예고하십니다.


2. 예수의 운명에 대한 예고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배척을 받아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라고 하는 메씨아가 당할 운명입니다. 이 말씀 앞에 제자들은 참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우울해 졌을 것입니다. 이는 메시아에 대한 당시 유대인들의 생각과는 완전히 배치됩니다.

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는 막강한 힘으로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군림하는 강자였습니다. 이 세상에는 강자가 군림하고 강자의 편에 서는 사람이 살아남고 부귀와 영화도 누립니다. 그러다 보니 소위 ‘줄을 잘 서야 출세한다’는 말이 생겨나기까지 합니다.

역사 안에서 사람들이 꿈꾸고 기대한 하느님은 항상 강자였고, 강자가 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라는 강자를 통해서 그러한 꿈을 이루고자 하는 데서 나타난 것이 민강신앙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고대하던 메시아 역시 이런 인간의 기대와 상상을 넘어서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는 이스라엘을 강대국으로 만들어 주고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는 존재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이런 메씨아관을 근본적으로 뒤집어 버리십니다. 이제 새로운 메씨아는 섬김을 받는 왕이 아니라 섬기는 종이며, 강자가 아닌 약자이고,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주는 희생양이 됩니다. 이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체험한 후에 이에 대한 완전한 신앙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스승에 운명에 대한 이러한 예고는 제자들의 운명도 암시하고 있습니다.


3. 예수 추종의 조건

예수께서는 곧바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여기서는 예수 추종의 전제 조건이 제시됩니다. 즉, 자기 포기 혹은 자기희생, 그리고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제자는 스승을 따릅니다. 스승의 길, 스승의 운명에 동참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가 따르려는 스승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스승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을 때, 비로소 추종이 가능합니다. 스승의 운명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으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마도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 역시 초기에는 스승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했을 것입니다.

관계에서 서로 주파수를 맞추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파수를 잘 못 맞춰 종종 엉뚱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요즘 말로는 ‘코드가 맞다 안 맞다’라고 합니다. 코드가 맞지 않으면, 혹은 주파수를 잘 못 맞추면 동문서답, 동상이몽 하게 됩니다. 스승과 제자간에, 부부간에, 동료들간에, 주파수를 제대로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스승 예수님과 제자인 우리들 간에도 주파수를 잘 맞추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특히 베드로 사도 간에도 코드가 썩 잘 맞았던 것 같지 않습니다. 복음서 여러 곳에서 우리는 스승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와 행동을 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따르고자 하는 예수님과 코드를, 주파수를 잘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분의 눈으로 보고 생각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스승의 가치기준을 우리 것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의 참된 제자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당신께 주파수를 잘 맞추어 용기 있게 당신의 길,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라고 촉구하시는 듯 합니다. 그 길은 섬기는 길, 버림으로써 얻는 길, 죽음으로써 사는 길입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사랑의 길입니다. 사랑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목숨을 내어 놓는 길일 것입니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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