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에서 우리는 부모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죽는 그 순간에도 자신을 돌보지 않고 모든 것을 자식을 위해 내어주는 전폭적인 사랑을 봅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기적인 사랑하고는 틀립니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생명까지도 내어주는 자기 투신을 말합니다. 여기 앉아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부모님의 사랑으로, 아니 이 사랑을 먹고 자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지상 삶을 사실 때 하느님을 “아버지, 아빠”라고 부르셨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호칭에는 예수님과 하느님이 사랑으로 서로 온전히 묶여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우리 인간들한테도 부모와 자식 관계가 위아래, 다시 말해서 상하관계가 아니라, 내가 너 안에 있고, 너가 내 안에 있다는 사랑의 관계를 뜻합니다. 나의 살에서 나온 살이요, 나의 심장에서 나온 심장이요, 내 몸에서 나온 몸, 다시 말해서 너가 내가 하나라는 이 관계가 바로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이제 저 멀리 저 높이 하늘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사람들 사이에 거처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요한 묵시록 저자는 오늘 제2독서에서 하느님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보라, 사람들 가운데 있는 하느님의 장막이다. 하느님은 그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그분의 백성으로 지낼 것이다. 하느님 몸소 그들의 하느님이 되어 함께 계실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무시무시한 죽음의 세력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순간, 최후만찬 석상에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말씀, 곧 유언을 남겨주십니다. “서로 사랑하시오. 내가 그대들을 사랑한 것처럼 그대들도 서로 사랑하시오. 그대들이 서로 사랑을 나누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그대들이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을 앞둔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에게 꼭 던져야할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1)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어떤 때인가 2) 우리 인생에서 만나게 될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3)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어떤 때입니까?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오늘, 바로 지금이 내일을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둘째 질문, ‘우리 인생에서 만나게 될 사람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 중요한 사람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셋째 질문은,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입니다. 그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 다시 말해서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비록 피로 맺어진 친형제들은 아니지만,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사랑의 성혈로 말미암아, 하느님을 부모님으로 모시고 있는 참다운 형제자매들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우리 수도자들의 부모님들이 한 자리에 하고 계십니다. 우리 수도자들은 부모와 집을 떠나 수도원에서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삽니다. 수도원은 사랑의 학교입니다. 그러나 이 학교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듯이 자기 자신을 옆 형제에게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할 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오늘 지금 바로 옆 사람을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약점과 아픔과 고통까지도 크나큰 사랑으로 감싸 안을 때, “하느님 친히 그의 눈에서 눈물을 모두 닦아주시고, 다시는 죽음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기적입니다. 아니, 사랑의 기적입니다. 그러나 우리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불완전하다고, 우리는 사랑하는데 장애인이라고. 그렇지만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무한히 베풀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함께 하시는 아버지 어머님, 하늘만큼 우주만큼 예수님만큼 사랑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