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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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공동체 생활에 관한 단상: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4 21:31:3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987   
월피정 강론(96. 5. 4)

현대인은 고슴도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가까이 할수록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고슴도치는 온 몸에 가시가 있어 붙을 수록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현대는 그 어느때보다도 개인의 자유와 개성이 강조되는 시대입니다. 그 결과 지나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합니다. 그래서 개인으로서는 뛰어나고 잘 살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함께 사는 것, 더불어 사는 것은 점점 힘들어 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함께’에서 ‘홀로’의 삶으로, ‘우리’에서 ‘나’의 삶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공동체보다도 개인이 강조되는 오늘날 한 두명도 아니고 몇십명, 몇백명이 함께 산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며, 심지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수도생활은 분명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왜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살고 있습니까? 개인이 강조되는 이 시대에 함께 모여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함께 모여 사는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장차 올 하느님 나라의 삶을 미리 앞당겨 삶으로서 그 나라를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수도생활을 흔히 하느님 나라의 가시적 표현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수도생활은 지금, 이곳에서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는 생활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의 삶이란 어떠한 삶입니까?


하느님 나라의 삶은 무엇보다도 개인이 아닌 공동체적 삶입니다. 우리 베네딕도회원들에게 있어 공동체 생활은 중요합니다. 베네딕도회 삶은 하나의 규칙과 아빠스 밑에서 함께 하느님을 찾는 공동체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공동체 생활은 하느님 나라의 삶을 증거하기 위한 삶이고, 우리는 바로 이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를 잘 증거하기 위해선 어떠한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가?


첫째, 정의가 실현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높은 사람 낮은 사람이 없는 나라, 자리나 직책 또는 능력에 따라 평가받는 나라가 아니라 모두가 다 존엄성을 인정받는 나라입니다. 건물을 짓기 위해선 아무리 작은 돌 하나라도 다 쓰일데가 있듯이 아무리 능력없고 쓸모없어 보이는 사람도 다 나름대로 자기 자리가 있는 법입니다. 따라서 공동체 안에 결코 직책이나 능력에 따른 불평등이나 차별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그 누구도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고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수도원의 규칙이나 관례는 장상이건 수하이건, 노인이건 젊은이건 그 대상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또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어느 특정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형제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도규칙은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통해 더욱 자유롭게 되는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이것은 이 생활을 자유로이 받아들인 모든 이가 준수해야 할 규범입니다. 그 누구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물론 공동체 생활을 하다보면 예외적인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직책상 특권이 부여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봉사나 섬김을 위한 특권일 뿐입니다. 일신의 영달이나 안위를 위한 특권이 될 때 문제가 됩니다. 이것을 분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성숙된 자세가 요구됩니다. 공동체 안에 특정인에 대한 예외나 특혜가 많으면 그 공동체는 평화로운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예외나 특혜를 은근히 바라고 또 부러워한다는데 있습니다. 이는 자유로이 모든 것을 포기한 수도자다운 모습이 아닙니다. 참으로 자유롭지 못한 모습입니다.

인간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상황이나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완전한 자유의사에 따라 선택하는 여기에 바로 인간의 존귀함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도생활로의 부르심에 자유로이 응답했습니다. 그래서 수도생활에 장애되는 모든 것들(부, 명예, 권력, 자기 뜻)을 포기하고 수도생활에 필요한 것들(수도규칙, 수도전통)을 자유로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우리가 포기한 것들을 다시 추구한다거나, 아니면 우리가 자유로이 선택한 것들을 버리려고 한다면 이는 우리 스스로의 존귀함을 파괴하는 행위이며, 이것만큼 자유롭지 못한 행위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수도생활을 하려고 수도원에 들어왔습니다. 결코 어떤 특정한 일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개인의 이상이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수도생활을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분명 길을 잘못 들어선 것입니다. 수도생활에 맞지 않는 것들, 수도정신을 해치는 것들은 과감히 배제하고 배척해야 합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은 성숙된 자의 자세입니다. 남들과의 비교는 금물입니다. 남이 이렇게 하기 때문에 나도 이렇게 해야한다거나 또 그것을 못해 부러워 할 필요도 가치도 없습니다.


특별한 대우나 혜택을 거부할 수 있음은 상당히 성숙된 자에게서 가능한 일이며, 그러한 거부는 하나의 큰 자유입니다. 제가 아는 아빠스 중에 이런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제게 많은 영향을 준 분으로 상당히 큰 공동체의 최고 장상이자 영적인 사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다른 형제들과 똑같이 공동규칙을 준수하며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분은 형제들과 똑같이 노동했고, 식사를 위해 형제들과 함께 줄을 서서 음식을 배식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도하에 있는 공동체들을 시찰할 경우 그 공동체의 형제들과 똑같이 육체노동을 하였습니다. 병상에 있는 동안 심지어는 임종시에 조차도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을 거절하였습니다. 어느날 병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 직제자 중 하나가 당가에게 청해 새 담뇨를 가져다 덮어주자 이렇게 이야기하며 그것을 사양하였습니다.

“우리가 형제들의 노동과 요구를 돌본다는 이유로 우리 자신을 편한하게 할 권리를 갖는다는 말입니까? 이제 어디에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당신은 형제들 중 누가 아픈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들의 거처를 방문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이분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회수도생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성 빠코미오 아빠스입니다. 특별한 대우를 거부한 그에게서 우리는 상당한 자유로움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공동체를 위해 이만큼의 기여를 하고 있으니 이정도의 특권이나 특혜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미성숙한 생각이며, 스스로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뿐입니다. 예외나 특혜가 적고, 모두에게 동일한 규칙과 원칙이 적용되는 정의로운 공동체만이 평화로울 수 있고, 참으로 하느님 나라를 증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서로를 신뢰하고 격려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를 헐뜯고 불신하는 공동체는 결코 하느님 나라를 증거할 수 없습니다. 서로의 약점을 들추어 내어 헐뜯고 비웃는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말없이 채워주는 훈훈하고 사랑어린 공동체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맛나는 공동체 생활이 될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공동체 생활에서 완전한 개인은 별로 필요치 않습니다. 공동체 생활은 부족한 개인들이 모여 힘을 합해 완성에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깍아 내리는 공동체, 모두가 저 잘낫다고 혼자 노는 공동체는 내적인 결속력이 없는 소위 콩가루 집안이 됩니다. 이것은 공동체가 아니라 그냥 각자의 목적대로 함께 거주하는 아파트나 하숙집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홀로 살기 위해 수도원에 오지 않았습니다. 공동체 생활은 단순히 함께 먹고 자는 생활이 아니라,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향해 함께 동고동락하며 하느님께 나아가는 삶입니다. 서로간에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신뢰회복은 서로에 대한 봉사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 봉사는 소위 밑지는 장사를 할때 가능합니다. 봉사는 자기 것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어디까지나 적자 인생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기 위해 공동체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 보았습니다. 첫째는 차별이나 차등 없이 모두가 평등한 정의로운 공동체가 되어야 하며, 둘째는 서로 신뢰하고 격려하며 힘을 합해 함께 하느님께 나아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과제라고 봅니다.

공동체의 쇄신과 수도생활의 개혁은 결코 말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말이 필요없습니다. 먼저 개혁과 쇄신에의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하고, 그 의지가 각자의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만일 누가 공동체의 쇄신을 원한다고 하면서 여전히 그릇된 옛 생활관습에 젖어 살고 있다면, 이처럼 우수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월피정일을 맞아 우리의 공동체 생활을 재점검해 보고, 새롭게 피어나는꽃들처럼 수도생활에 대한 우리의 열정이 새롭게 움터나기를 기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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