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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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4주일(다해) - 미래를 향한 전진: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4 21:29:2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638   
연중 제4주일 강론 (04. 2.1)
제1독서: 예레 1,4-5.17-19
제2독서: 1고린 12,31-13,13
복 음: 루가 4,21-30

미래를 향한 전진

먼저 오늘 저희 공동체와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여러분 모두를 환영합니다. 특별히 어제부터 수도생활 체험학교에 참여하고 있는 젊은이 여러분들과 피정중인 부산 임호 본당 중.고등부 학생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흔히 ‘구관이 명관이다’, ‘묶은 포도주가 더 좋다.’ ‘예전에는 이러이러했는데…’라며 옛 것에 대한, 과거에 대한 향수에 젖곤 합니다. 그러나 옛 것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구태의연’(舊態依然)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의 묶은 모습 그대로’라는 뜻입니다. 사물을 보는 시각도 사고방식도 의식도 태도도 전혀 변화 없이 고정불변한 경우에 쓰는 말입니다. 사람은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변화를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고 새로운 상황에 대처할 자신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냥 만사가 다 귀찮아지고 지금처럼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편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닥치면 당황해하고 불안해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화합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우리의 외적인 상황들이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합니다. 과거에 대한 막연한 향수나 집착으로는 새로운 변화에 대처해 나가기 힘듭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묵상거리를 던져줍니다. 복음에서 예수와 유대인들의 갈등이 나타납니다. 예수께서는 당신 고향 나자렛으로 가셔서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낭독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오늘 그들이 듣는 가운데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십니다. 이에 사람들은 예수의 말씀에 놀라고 의아하게 여깁니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곧바로 가시가 담긴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하십니다. 그들의 불신과 마음 속 생각을 꿰뚫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군중들은 늑대로 돌변합니다. 예수의 쓴 말이 그들의 비위를 거슬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와 유대인들의 갈등은 마치 새것과 헌것의 갈등, 현재와 과거의 싸움처럼 보입니다. 유대인들이 헌것, 과거를 상징한다면, 예수는 새것, 현재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틀에 매여 새것을 거부합니다. 그 첫 번째 원인은 그들의 편견과 고정관념입니다.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루가 4,22)라는 말이 단적으로 드러내 줍니다. 그들은 과거의 눈으로 예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결과 ‘오늘’, 바로 ‘여기서’ 예수를 통해 실현된 복음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편견과 고정관념은 우리 마음의 눈을 멀게 하여 사물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 눈을 과거에 붙박아두어 현재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고약한 훼방꾼입니다. 그래서 “제는 원래 저래”, 혹은 “저건 원래 저런 거야”라고 말합니다.

새것을 거부하는 두 번째 원인은 그들의 오만과 독선입니다. 그들은 구원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예언자도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합니다.”(루가 4,24)라는 말에 걸려 넘어집니다. 이방인들에게 일어난 기적을 이야기 하는 예수의 말에 분통을 터뜨립니다.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특권의식을 무너뜨리는 쓴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우리가 최고라는 생각과 태도, 그래서 자기 뜻과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태도 등입니다. 우리 모두는 부족합니다. 스스로 다 채우지 못하는 공백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필요합니다.

이처럼 편견과 고정관념, 오만과 독선이 유대인들로 하여금 새것을 거부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없는 헌 부대였던 것입니다. 유대인들과는 달리 예수께서는 새로운 틀을 제시하십니다. 그분 자체가 새것, 새 포도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담기 위해서는 새 부대, 새로운 의식의 틀이 필요합니다. 헌 부대, 과거의 틀로서는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살 수 있습니다. 과거의 잣대로 현재를 재단하고, 과거의 틀로 현재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를 바로 보지도 또 오늘의 변화된 상황에 대처하지도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과거의 틀에 매여 있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을 것입니다. 변화된 상황에 따른 새로운 내용물을 담을 새 그릇을 마련해야합니다. 내용물이 바뀌었는데, 그릇은 항상 그대로라면 새 내용물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습니다. 교회가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가지 못하는 것도 바로 변화되어야 하는 사고의 틀, 의식의 틀을 바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용을 담아내는 틀은 시대와 장소, 상황에 따라 변화되어야 합니다. 내용이나 정신이 아니라, 그것을 담는 틀이나 그릇만을 고집하다 보면 율법주의, 예식주의, 형식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들을 우리 안에서 종종 보게 됩니다. 의미도 모르고 행하는 전례 동작들, 정신이 사라진 규율과 관습들, 타성에 젖어 기계처럼 움직이는 삶의 모습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살다보면 변화되어야할 것들이 있고 또 변화되어서는 안 될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분별하기는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종종 변화해서는 안 될 것들은 쉽게 바꾸고 변화해야할 것들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집착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신.구 세대간 갈등, 구질서와 새질서 간의 긴장으로 앓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급격한 변화의 물결이 소용돌이 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교회가, 또 수도 공동체가 어떻게 대처해 나아가야 하는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일찍이 어느 역사학자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빗대어 우리 삶을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갈등’, ‘옛것과 새것의 지속적인 긴장’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세상과 교회 안에서 옛 질서와 새 질서의 갈등, 과거와 현재의 갈등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입니다. 수도 공동체 안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긴장과 갈등 자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과거로 되돌아가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미래로 나아가기는 어렵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의 여정에 지쳐 자꾸 이집트를 그리워했듯이 우리 역시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광야와도 같습니다. 척박하고 황량한 광야를 가다보면 이집트의 고기가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는 온갖 시련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그것은 약속된 땅 가나안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우리 자신의 낡은 의식의 틀과 삶을 쇄신하려는 부단한 노력 없이 미래는 보장되지 않습니다. 시대의 정신을 담아내지 못하는 그릇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만과 독선,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개인과 공동체는 자동 퇴보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틀이 필요합니다. 새 술을 담을 수 있는 새 부대가 필요합니다. 이는 온갖 오만과 편견에서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때 시대의 변화와 도전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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