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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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성탄 대축일 낮미사 (2003년): 인 끌레멘스 원장 신부 07-10-14 21:26:5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599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거처하셨다.” 어제 밤 우리는 한 아기의 탄생을 지켜봤습니다. 드디어 하느님께서 작은 갓난아이로 우리 가운데 탄생하셨습니다. 멀리 계셨던 하느님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우리 가운데 거처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사는 시간과 공간 안으로, 우리 역사 안으로 하느님께서 들어오셨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의 한계에 들어오셨다는 말입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배가 고프면 울고, 배가 부르면 자고, 엄마 앞에서 방글 방글 웃는 아기이십니다. 우리는 이 아기를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됩니다.


이처럼 감히 상상도 못하는 방법으로 이 세상에 오신 하느님의 이 놀라운 사건 앞에서 시편 88편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하리라. 내 입으로 그 진실하심을 대대에 전하리라.” 그렇습니다, 말씀께서 육신이 되신 이 사건은 ‘사랑’이라는 말밖에는 머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저 우리는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못합니다.

시편의 시인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히 노래할 뿐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한테 사랑이 머냐고 물으면, 그들한테서 ‘사랑은 사랑이지’ 라는 궁색한 대답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중세 때 위대한 영성가인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하여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사랑하는 벗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은 물론이고 자신까지도 음식으로 내어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자신을 몽땅 내어주시는 것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내어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으시고, 시간 밖에 계시는 하느님께서는 과감히 당신 자리를 떠나 아드님의 육화를 통하여 우리 인간의 시간 안으로 들어오셨고, 삶에 지치고 분주한 우리 인간과 함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 수도 형제들을 비롯한 우리 모두는 올 한해를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비록 어렵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리는 정말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이제 성탄과 연말을 맞이하여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열심히 달려왔지마는 항상 부족한 것을 느낍니다. 우리 가운데 거처하시는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면, 내가, 우리 공동체가, 우리 사회가 미쳐 신경을 못 쓴 것이 무엇인가가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씀께서 당신 땅에 오셨건만 그분 겨레는 맞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와 시간을 함께 하시고자 하느님께서 우리한테 오셨지만, 과연 우리는 하느님께 얼마큼이나 우리의 시간을 내어 드렸습니까? 분주한 일에 쫓겨 하느님을 등한시 한 것은 아닙니까.


더 나아가, 우리 이웃한테 우리는 얼마큼이나 시간을 내었는지요? 저 개인적으로도 형제들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체험합니다. 사실 여러 가지 일들이 우리한테는 많습니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 그래서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는 것이 현실입니다. 수도자이든 평신도이든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내 시간을 쪼개 형제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희생입니다.

어떤 분이 저한테 이번 성탄 카드 메일에 이런 내용을 보내주었습니다. “참 형제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형제들 살피는 거 게을리 하지마세요. 인간적인 외로움이나 힘듦을 말없이 이해해주는 그런 원장 신부님이 되길 바래요. 그리하여 힘들고 성소가 흔들린다고 생각될 때 당신과 잠시 함께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게 해주세요. 나야 원장신부님의 자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자리인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그 자리는 형제들에게 평온을 선물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시간 쪼개서 마음을 선물하세요. 일에 쫓겨 미루지 마시고요.”


저는 이 메일을 일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내어준다는 것은 장상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수도원에서든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우리 모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몫입니다. 자기의 시간을 이웃을 위해 쪼개는 것은 자기희생입니다. 이러한 희생이 바로 참다운 사랑입니다. 어떻게 희생을 전제로 하지 않고 사랑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불가능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은 임마누엘이신 하느님, 다시 말해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자신을 비우시어 우리와 함께 시간 안에 사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의 신비입니다. 분주한 일상 안에서도 하느님과 이웃에 우리 각자의 시간을 내어주는 우리가 됩시다. 시간을 내어주는 것 이것이 바로 참다운 사랑입니다.


“정녕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거쳐하셨다. 우리는 그분 영광을 보았다. 아버지께로부터 오시어 은총과 진리로 충만하신 외아드님의 영광을 보았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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