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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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성녀 오딜리아 동정 대축일: 인 끌레멘스 신부 07-10-14 21:24:1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934   
성녀 오딜리아 동정 대축일 (2003.12.13)

하느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우리 인간의 생각과 상식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당신의 뜻과 의지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구현하십니다. 특히 우리 연합회의 시작을 보면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우리 오딜리아 연합회는 암라인 신부를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암라인 신부에 관해서는 잘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약점이 무척 많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말년에는 수도 공동체에서 쫓겨나서 쓸쓸히 여생을 보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부족한 사람을 당신의 도구로 쓰셨습니다.

우리 연합회의 주보 성녀인 오딜리아 성녀 역시 장애인이었습니다. 태생 장님이었습니다. 이 여인을 당신의 도구로 쓰시고자 기적적으로 눈을 뜨게 하셨고 수녀원을 세워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한결같이 허점투성이고, 약점 투성이임을 잘 압니다. 우리 공동체를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공동체의 약점이 많습니다. 제가 종신 서원 청원을 할 때가 생각납니다. 그 당시 장상이셨던 이 마르티노 아빠스님께서 이런 훈화를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공동체의 장점과 약점을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서원 청원을 했다는 것은 이런 장점 뿐 아니라 공동체의 약점까지도 다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약점, 허점은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어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면 살수록 어둠을 보게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런 모습까지 사랑하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수도 공동체로 부르셨고, 또 부르셨기 때문에 우리를 당신의 도구로 쓰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러한 확신은 다른 말로 하면 하느님께 대한 신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굳건히 신뢰를 두고 사는 사람은 어떤 어둠을 보더라도 놀라거나 도망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 모두를, 우리 각자를 선으로 이끄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어둠을 빛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께서 어둠을 빛으로 바꾸십니다.


우리 연합회의 특징은 “안으로는 수도승, 밖으로는 선교사”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선교는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일부 개신교 종파가 “예수 천당, 불신 지옥”하면서 마치 전투하는 것처럼 선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다운 선교는 우리의 말과 모범을 통해, 다시 말해서 우리의 삶을 통해, 참답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 공동체에게 맡겨주신 사명일 것입니다. 참답게 수도자처럼 살 때 선교하는 것이고, 참답게 선교자로서 살 때 수도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 둘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 공동체는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어떤 형제는 청소를, 어떤 형제는 출판사업을, 어떤 형제는 주방 일을, 또 어떤 형제는 목공일과 전기 일을 합니다. 또 어떤 형제는 본당에서, 아니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는 아무 일도 안하는 형제도 계십니다. 예를 들면 병실 침대에 온종일 누워계시는 마인라도 수사님이 그렇습니다. 이 모든 일이 바로 선교들 수행하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수도자로 살고 있다는 것 자체, 우리 존재 자체가 바로 선교 자체입니다. 어떤 형제는 직접적으로 선교 사명을 수행하고 또 어떤 형제는 간접적으로 이 일을 수행합니다.


이런 일을 하면서, 어떤 형제들은 기도를 못할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또 어떤 형제는 기도할 시간이 다른 형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을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어떤 형제는 본원에서 살기도 하고 또 어떤 형제는 개별 소임지에서 혼자 삽니다. 함께 살든지 혼자 살든지 우리는 다 부족합니다. 한 지체의 부족한 점은 다른 지체가 채워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으로 함께 사는 가치입니다.


시편 말씀이 생각납니다.
“좋기도 좋을씨고, 형제들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것.” 우리 한 형제 한 형제는 한 공동체를 이루는 지체들입니다. 각자의 부족한 점과 어두운 점을 서로 채워주고 밝혀주고 보듬어주고 이해해 줄 때, 우리 각자 안에 있는 작은 빛은 함께 모여 더욱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이 빛이 세상의 어둠을 이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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