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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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 29주일(나해)-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4 15:12:1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035   
연중 제29주일(03. 10. 19) -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제1독서: 이사 2,1-5
제2독서: 로마 10,9-18
복 음: 마태 28,16-20

복음화의 의미와 전망: 양에서 질로의 전환

형제자매 여러분, 어느덧 10월도 중순을 넘어섰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기운이 감돌고, 수도원 정원의 나무들도 서서히 옷을 벗어가는 것을 보니 이제 완연한 가을인가 봅니다. 오늘은 전례력으로 연중 제29주일이지만, 우리는 오늘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합니다. 교회는 1926년부터 10월 마지막 전 주일을 전교주일로 정했습니다. 그리스도인 본연의 사명인 선교 사명을 일깨우고,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와 도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전교주일을 기해 오늘은 복음화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그대들에게 명한 것을 다 지키도록 가르치시오”(마태 28,19-20). 우리의 복음 선포 사명은 바로 예수님의 이 명령에 바탕을 둡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복음을 다른 이에게 전하도록 불림 받았습니다. 따라서 복음 선포는 그리스도인 실존의 근거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어떤 기쁜 소식을 듣게 되면, 남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 본성일 것입니다. 함께 나눌 때, 더 풍요로워지듯 복음 역시 함께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어쨌든 예수님의 이 명령으로 인해 복음은 널리 확산되어 나갔고, 마침내 유럽의 그리스도교화를 이루어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이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교사들은 일차적인 복음의 전령들입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많은 민족들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며, 우리 모두의 사명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복음 선포 과정에서 교회가 범한 오류들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선교가 강대국들의 식민지 정책과 깊이 연결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약소국들을 정복하고 다스리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무력으로 개종을 강요당했고, 개종을 거부한 사람들은 희생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이런 부정적인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과거의 복음화, 선교의 방법은 주로 수평적인 차원, 곧 양적인 팽창에 치중했던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많은 지역과 나라에 그리스도교를 이식시킬 수 있었고, 또 교회의 외적인 성장을 가능케 하였습니다. 그러나 참된 복음화를 이루었다고는 선뜻 확신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질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복음화란 무엇인가? 그리고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전망은 무엇인가?

복음화란 단지 그리스도교의 양적인 팽창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수는 결코 소수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서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나 세계는, 또 우리 사회는 전쟁과 폭력, 착취와 불의, 반목과 대립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아닐 것입니다. 이는 복음은 전해졌으나, 복음화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해 줍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복음에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이(로마 10,16 참조) 더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너무도 양적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사회, 문화, 경제의 발전도 양적인 가치 기준에 따라 평가됩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외적인 능력이나 상태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질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습니다. 앞으론 질로써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종교는 생명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예전처럼 우리 사회에 별로 신선함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종교인들이 그래도 비교적 양심적인 사람들로 간주되었고, 존경을 받아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인들에게서 그런 좋은 감정과 느낌을 거둔지 오래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를 두고 개독교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종교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청하는 바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양이 아니라 바로 질입니다. 이제 양으로 승부 거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영세자나 입회자의 수가 복음화나 공동체 발전의 척도일 수는 없습니다. 양에 치우치다 보면 질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제는 양보다 질을 높여야 할 때입니다. 양적인 발전에 치중했던 수평적 차원에서 질적 향상을 향한 수직적 차원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변화무쌍한 이 시대, 이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복음화는 결코 숫자 놀음이 아닙니다. 신자수를 불려 교세를 확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의 증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닮은 변화입니다. 삶과 인격의 변화입니다. 우리의 가치 기준을 그리스도의 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 인격과 삶을 그리스도처럼 변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복음화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요란스럽지도 또 빠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즉시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더 힘이 있고 확실한 복음화의 길입니다.

신앙은 전염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언젠가 어떤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참으로 공감하는 말씀입니다. 전염병은 눈에 띄게 요란스럽게 번지지 않습니다. 소리 없이 은밀하게 퍼져나갑니다. 하지만 그 파급효과는 엄청납니다. 우리는 올해 사스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우리 신앙도 비슷합니다. 요란스럽게 떠벌인다고 전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바를 각자 삶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실천함으로써 전달됩니다. 신앙은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닮은 우리의 인격과 삶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복음화는 우리 자신의 복음화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 가정, 우리 공동체부터 복음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복음화 되지 못하고서 남을 복음화 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하느님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참된 선교도 복음화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다울 때, 수도자다울 때, 또 성직자다울 때, 선교는 저절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복음 선포는 우리의 인간적 노력에 좌우되지 않고, 무엇보다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전교주일을 맞아 먼저 우리 자신의 복음화로써 우리 신앙을 전염시켜 나가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양에서 질로의 전환을 통해 이 시대가 요청하는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진력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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