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27주일(나해)  2003. 10. 5.  수도원 강론

창세기 2,18-24; 히브 2,9-11; 마르코 10,2-16

도입말

오늘은 연중 제27주일이고, 군인주일이기도 합니다. 이 미사중에 군인들과 이들을 사목하는 군종 신부님들, 군종 후원회원들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합시다. 아울러 오늘 대구 신학교에서는 우리 수도원의 이 유스티노 수사와 권 바오로 수사가 독서직을 받고, 류 디도 수사가 시종직을 받습니다. 이 수사들이 자신의 봉사 직무를 받아들임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봉사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도록 기도하도록 합시다.

오늘 성수 예식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세례를 기억합니다. 세례를 통하여 받았던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늘 자랄 수 있도록 기도하며, 이 구원의 신비를 거행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반성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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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당에서는 군종 신부님들이 오셔서 강론을 하거나, 군종 교구장님의 메시지를 강론 시간에 읽기도 합니다. 오늘 때 마치 군복무 중인 우리 형제가 휴가를 받아 수도원에 왔지만, 수도원 강론에서는 오늘의 복음에 대하여 묵상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하지만 오늘 봉험금은 모두 군종 교구로 보내져서, ‘선교의 황금어장’이라 불리는 군인들의 사목을 위하여 사용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혼인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천지 창조때부터 하느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고, 둘은 합하여 한 몸이 되었는데,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갈라놓아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혼인의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오늘날 가정이나 부부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는 것은 더 이상 단순한 일이 아니라, 아주 복잡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7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전통적인 의미의 대가족 제도가 가족 제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는데, 우리나라 산업화와 인구의 도시 집중과 함께 핵가족화가 진행되더니, 이제는 아주 다양한 형태의 가족 제도가 우리 사회 안에 공존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가족이나 가정이라는 말이 ‘가구’라는 말과 별로 다르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홀로 사는 ‘일인 가구’나 어머니와 자녀로 구성된 ‘모자 가족’, ‘소년 소녀 가장 가구’, ‘노인 단독 가구’, ‘동거 가구’ 등 새로운 형태의 가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부부와 자녀가 함께 사는 전형적인 형태의 가구가 전체 가구 중 2/3 정도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독신자 가구나, 자식과 동거하지 않고 부부만 사는 가구, 직장이나 자녀 교육 등의 이유로 떨어져 사는 비동거 가족 등도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를 가지지 않는 무자녀 가정, 부모 중 한쪽하고만 사는 편부모 가정, 재혼 가정, 입양 가정, 심지어 벨기에나 네덜란드에서 합법화된 동성애자 가구 등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TV 드라마나 영화, 매스컴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것은 소위 ‘바람난’ 가정의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 것입니다. 그동안 너무나 가부장적인 분위기에 눌려왔던 다양한 목소리들이 한참에 터져나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 가족제도나 가정의 붕괴는 수 많은 문제점들을 우리 사회에 던져주고 있습니다.

혼인률이 지난 30년 동안에 급격히 감소하고,,, 결혼한 부부도 가급적 자녀를 출산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출산률은 프랑스 보다도 더 낮은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혼률은 미국에 이어 2위를 하고 있으며, 이혼률 증가로만 보면 미국을 제치고 단연 1등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급격한 가정의 변화 혹은 붕괴는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덮어두고만 있을 수 없는 문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보도록 합시다. 혼인이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서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혼인이란 ‘떠나는 것’, ‘합하는 것’,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떠남”이란 자기들의 부모로부터 내적, 외적으로 독립하여 권리와 책임이 따르는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 ‘떠남’은 이제까지의 모든 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관계인 부부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합한다”는 것은 사랑의 일치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부부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말하고 다른 어느 누구도 그 사이에 비집고 들어올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또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교회가 완전한 일치를 보여 주듯이, 부부가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일치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혼인을 하나의 신비적인 차원으로 들어 높여 줍니다. 이러한 신비는 사랑 안에 살아갈 때 우리가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자신을 내어 주는 희생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러한 사랑의 참 모범이십니다. 우리는 부부의 사랑 안에서 이러한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이 아니면서도 나와 한 몸을 이루는 사람... 이것이 부부입니다. 이러한 부부의 사랑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자연적이고 일상적인 일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자세히 바라보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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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지 않은 우리 수도원 형제들 앞에서 부부 사랑이나 화목한 가정,., 이런 이야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잠시 할까 합니다.

오늘 미사 시작 때 성수 예식을 했듯이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수도 서원은 이러한 세례로 인한 일치를 더욱더 풍요롭게 하는 하나의 축성입니다. 그래서 수도서원을 제2의 세례라고도 표현합니다. 부부가 이 험난한 세상 안에서 자녀들과 더불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힘든 항해를 하듯이, 우리의 수도생활도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우리 형제들과 더불어 함께 나아가는 기나긴 인생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틀 전에 수도원 묘지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그리스도와의 '결혼 계약'을 파기하지 않고 일생동안 수도자로 살았던 선배 수사님들이 편안히 잠들고 계셨습니다. 부부들에겐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배우자에게 충실해야 할 의무가 있듯이, 수도생활을 하는 우리들은 죽을 때 까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충실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오늘날 우리 사회를 ‘바람난’ 사회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는 광폭한 바람이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잔잔한 바람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맡기는 하루 하루가 되도록 기도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