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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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23주일(나해):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4 15:08:3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971   
연중 제23주일 강론(03.9.7)
제1독서: 이사 35,4-7a
제2독서: 야고 2,1-5
복 음: 마르 7,31-37

“좋기도 좋을시고, 아기자기 한지고, 형제들이 오순도순 한 데 모여 사는 것.” 이것은 성가 146장의 첫 구절입니다.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저절로 신이 나고 기분도 좋아집니다. 이 노래 가사처럼 오순도순 한 데 모여, 늘 기쁘게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함께 조화롭게 사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개인의 인격과 개성이 강조되는 시대에는 하나의 고행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격조 높은 하나의 예술처럼 보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을 읽으면서 우연히 함께 사는 기술에 대해서 묵상해 보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참된 신앙 공동체의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귀먹은 반벙어리에게 “열려라 하시자, 그의 귀가 열리고 굳은 혀도 풀려 말을 제대로 했다”(마르 7,34-35). 일반적으로 귀가 먹으면 언어장애까지 따라오게 됩니다. 이것은 논리적으로도 일리가 있습니다. 말을 듣지 못하니 당연히 할 말도 별도 없게 되고, 결국 이중 장애를 겪기 마련입니다.

가끔 주변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소리들을 들지 못하고, 또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생각하게 됩니다. 듣고 말할 수 없음은 큰 장애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런 육체의 장애보다 더 심각한 장애는 영혼의 장애입니다. 곧 마음의 귀먹음, 마음의 눈멂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영혼의 질병입니다.

귀먹은 반벙어리의 치유에는 보다 깊은 상징적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치유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영혼의 장애를 거두어 주시어 당신의 말씀을 경청하고 응답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리는 것을 들음과 응답의 관계로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의 귀가 열려 하느님 말씀을 제대로 듣고, 혀가 풀려 거기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치유 이야기에서 우리 삶에 필요한 몇 가지 교훈을 뽑아 낼 수 있습니다.

먼저 열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수께서는 ‘열려라’하고 명령하십니다. 마치 우리 마음을 열라고 촉구하시는 듯 합니다. 먼저 마음의 눈, 귀, 입이 열려야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듣고, 제대로 말하게 됩니다. 이 모두가 닫히면 불구가 됩니다. 이는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폐쇄되고 배타적인 공동체는 절대로 건강할 수가 없습니다. 참된 신앙인은 열린 사람이고, 참된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열린 공동체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 치유기적을 행하신 장소가 이교지역이라는 점이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는 유대인들 외에 이방인들의 구원에도 관심을 가지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는 누구에게도 배타적이지 않으셨습니다.

그 다음은 잘 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귀가 열리면 자연히 잘 듣게 됩니다. 마음의 귀가 열리면 주님의 말씀을, 남의 말을, 세상과 시대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들으시오”(야고 25). ‘듣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제대로 듣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듣더라도 잘 못 들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많은 소리들이 있지만 가려서 들어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쓰레기통이 반기는 쓸데없는 소리들이 너무 많습니다. 또 어떤 소리들은 달콤하지만, 영혼의 건강과 공동체의 성장에 해로운 것들도 있습니다. 반면 어떤 소리들은 쓰지만, 이로운 것들도 있습니다. 다양한 소리들을 분별하여 듣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만일 어떤 개인이나 공동체가 달콤한 말만을 들으려한다면, 더 이상 성장 가능성이 없을 것입니다. 쓴 말이나 비판적인 말도 경청하는 자세야말로 참된 성숙의 표지라 봅니다. 우리는 잘 듣는 사람, 잘 듣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잘 말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들음에 대한 응답과도 같습니다. 제대로 들을 때, 올바로 응답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세상의 소리에, 서로의 소리에 잘 응답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응답이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바른 말을 하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해, 세상에 대해 말을 제대로 할줄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예, 예’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때론 ‘아니오’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벙어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옳은 말을 하는 법을 잊어버리면 개인도 공동체도 불구가 될 수 있습니다. 서로에 대해서 충고와 격려가 가능한 공동체, 옳고 그름을 분명히 표명할 수 있는 공동체야말로 성숙된 공동체일 것입니다. 우리의 응답은 또한 간결하고 이치에 맞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성으로 걸러지지 않은 감정적인 말들은 자신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은 비단 입을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삶이 말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삶으로, 우리 인격 전체로 하는 말이야 말로 힘이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오늘 제2독서는 진정한 신앙인, 참된 공동체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또 다른 빛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지닌 여러분은 사람을 차별하지 마시오”(야고 2,1). 사람에 대한 차별은 세속적 가치에 따를 때, 따라옵니다. 소위 세속적인 지위나 권력 등으로 사람을 차별대우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질타한 공동체는 세속적 가치와 차별이 지배하는 거짓 공동체였습니다. 그 공동체에서 복음은 선포되고 있지만, 그들은 복음의 참된 의미와 정신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거기에는 특권의식과 사리사욕, 퇴폐한 생활습관과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귀먹은 병든 공동체였던 것입니다.

한 공동체 안에 높고 낮음도, 귀함도 천함도 없이 그리스도 안에 한 형제자매라는 의식이 충만히 지배할 때, 그 공동체는 건강한 공동체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가치가 지배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세상의 가치들이 지배하는 공동체 안에는 세속적인 서열과 차별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 각자의 공동체 안에는 과연 어떤 가치들이 지배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형성된 새로운 공동체 안에선 절대로 차별이 있어선 안 됩니다. 만약 한 공동체 안에 특권과 예외가 일상화되어 있다면, 건강한 공동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공동체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들은 모두 함께 사는 기술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토대로 우리는 참된 신앙 공동체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겠습니다. 즉, 열린 공동체, 잘 듣는 공동체, 잘 말하는 공동체, 그리고 차별이 없는 공동체입니다. 이런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요 역할이 아닌가 합니다. 자비하신 주님께서 우리 영혼의 장애들을 거두어 주시어 우리가 제대로 보고 듣고 말하며 조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간구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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