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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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사순 제2주일(다해, 2016.2.21.)-고 이사악 신부 16-02-22 08:28:4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6903   

사순 제2주일(다해)

 

루카 9,28-36  

도입구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는 사순시기는 참회와 속죄의 시간이지만 넓게 보자면 변화를 준비하는 정화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겨울을 마무리하고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의 변화가 상징하듯 죽음으로 귀결되는 우리 삶의 방향을 생명으로 돌리는 일이 사순시기 동안에 해야 할 과제입니다. 머리에 재를 얹고 사순시기를 시작한 지 벌써 열흘이 지났습니다. 이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본격적으로 재의 시기에 돌입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일상을 약동하는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채우려면 버려야 할 낡은 것들이 무엇인지 살펴보며 사순 제2주일 미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강론

작년 11월 경, 신문지상에 흥미로운 연구결과 하나가 소개되었습니다. 미국 시카고 대학 연구팀이 생물학 동향이라는 유명한 의학저널에 게재한 내용입니다. 연구팀은 전세계 여섯개 나라의 다섯 살에서 열두 살까지 어린이 1170명을 대상으로 종교와 이타심·도덕성 등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분석했다고 합니다. 우선 이타심을 측정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스티커를 10개씩 갖게 한 다음에 주변의 낯선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게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종교가 있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평균 3.3개의 스티커를 나누어준 반면에, 종교가 없는 집 아이들은 평균 4.1개의 스티커를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덕성측정을 위해, 한 아이가 다른 사람과 우연히 또는 의도적으로 부딪히는 장면을 담은 만화 동영상을 보도록 한 뒤, 이들의 반응을 평가했습니다. 이 시험에서도 종교가 있는 집의 아이들은 서로 부딪히는 행위에 대해 그럴 수 있다또는 봐주자라는 반응보다는 잘못됐다며 처벌해야 한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종교가 있는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종교가 없는 집의 아이들보다 훨씬 더 이기적이고 베풀지 않는다는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신앙심이 두터운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더 이타적이고 관대할 것이라는 통념이 전혀 근거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종교와 이타심·도덕성 간의 이러한 역관계는 아이의 나이가 많을수록 정도가 심했습니다. 다시 말해, 종교적 환경에서 자란 기간이 오래될수록 부정적 영향의 정도가 강했다는 말입니다. 이에 앞서 2012년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팀도 종교가 있는 사람일수록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타인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심이 덜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 종교인들은 일반 사람들에 대하여 도덕적, 윤리적 우월감을 갖고 삽니다. 이 근거없는 우월감이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원인과 배경이 있겠지만, 그중에 그리스도교에서는 고질적인 병폐인 선민의식이 크게 작용한다고 봅니다. 잘 아시다시피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히 선택되어 뽑힌 사람들이라는 그리스도교 특유의 신원의식은 유대교에서 내려온 정신적 유산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창세기 15장에 나오는 하느님과 아브라함이 맺은 계약은 선민의식의 뿌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쪼개놓은 짐승들 사이를 지나가면서 아브라함과 장엄한 계약을 맺습니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 이 계약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되었고 가나안 땅을 영원한 소유로 약속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선민의식은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통해 더욱 구체화됩니다. 시나이 계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소유가 되고 사제들의 나라가 됩니다. 이집트 종살이에서 풀려나 어중이떠중이 광야를 떠돌던 무리들이 놀랍게도 하느님의 거룩한 민족으로 변모했습니다.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보호자요 구원자가 되어주겠다는 약속은 다윗왕과 맺은 계약에서 완성됩니다. 하느님은 다윗 왕조를 영원히 굳건하게 하리라고 약속하며 이스라엘 민족의 번영을 보장합니다.

하느님과 맺은 이러한 계약들은 후일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 대해 우월의식을 가지게 하는 근거가 됩니다. 그들 사이에서, 세상의 수많은 민족들 가운데 오직 자신들만이 하느님의 선택을 받아 거룩하게 구별된다는 독특한 믿음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하느님 백성으로서 거룩함과 순수함을 지켜려고 할례나 안식일법 같은 율법 규정들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영적인 결벽증세를 보입니다. 오로지 자신들만이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착각, 오로지 자신들만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망상은 그들을 심각한 오류에 빠지게 합니다.

진리는 하나이고 신도 하나입니다. 하지만 진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구현됩니다. 마찬가지로 신의 현존 방식도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다채롭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방식으로만 하느님이 현존해야 한다고 고집했습니다. 착각과 망상에 빠진 유대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중대한 사명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하느님은 온 세상에 당신의 축복을 전하는 도구로 삼고자 그들을 선택했습니다. 유대인을 편애하여 그들에게만 구원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옛 계약은 효력을 발효하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 계약이 체결됩니다. 우리도 미사를 통하여 예수님이 맺은 새로운 계약에 당사자로서 동참합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려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예수님의 피로써 하느님과 맺은 새 계약은 인류뿐 아니라 온 누리 창생들에게 구원과 구속을 선사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는 벗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숭고한 사랑을 상징하며, 죽기까지 자신의 뜻을 포기하여 아버지의 뜻에 따르는 철저한 믿음을 표현합니다. 이 사랑과 믿음이 우리에게 구원의 진리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새 계약은 진리가 소유의 대상이 아니며 실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또한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진리를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방식이라는 사실 역시 깨우쳐 줍니다. 새 계약은 예수님의 피로 쓰여졌고 그 피에는 태초부터 시작된 인류 구원를 향한 하느님의 장구한 자비의 역사가 서려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그 자체로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최고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비천한 인간의 몸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현존이 이루어지는지, 한낱 짐승에 지나지 않는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이 선택한 아들로 변모하는지 파스카 신비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줬습니다.

오늘 우리가 복음에서 들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화는 파스카의 신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미리 알려줍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신앙인들은 더욱 예수님의 모습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자비로운 아버지 하느님의 모습을 닮아가야 합니다. 만일 이에 역행하는 현상을 보인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에 중대한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새 계약이 성취되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구원을 보증하는 진리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게 만드는 추문거리로 전락할 따름입니다.

진리를 가졌다고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 그 진리를 올바르게 실천할 때 구원의 문이 열립니다.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진리는 우리를 낡은 것에서 해방시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실천이나 행동없이 진리 그 자체에 집착하기만 한다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진리는 자비입니다. 자비말고는 예수님을 통해서 계시하신 하느님의 구원 진리는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를 통해서 베풀어질 때 우리는 하느님의 선택받는 아들과 딸로 변모합니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변모되었는지 아니면 변질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는지 자신을 살피는 한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순시기가 의무적인 고행과 극기를 마지못해 채워야 하는 괴로운 시간이 아니라 아집과 집착으로 이루어진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탈피하는 은혜로운 시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화의 시기를 마친 우리가 훗날 주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하느님 아버지의 기쁨이며 화관으로 변모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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