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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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 제11주일(나해, 2015.6.14.)-서 알베르토 신부 15-06-15 10:08:4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895   

연중 제11주일

(마르 4, 26-3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싹이 터서 자라고 열매를 맺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했습니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 보다 작지만 나중에 자라서 커지면 큰 가지들이 뻗어 하늘의 새들이 거기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숲이 우거진 나무에 새들이 노니며 노래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습니까? 생각만 해도 평화로움 자체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뭇 사람들이 거기서 평화를 누리고 기뻐 노래하며 행복한 생활을 하는 곳일 것입니다. 우선 교회 공동체는 바로 이러한 곳이라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성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교회의 모든 공동체도 또한 이러한 공동체라야 합니다. 가정 공동체는 가정 공동체대로 가정의 평화로 가족들이 서로 화목하고 기쁨을 누리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외출했다가도 집에 돌아오면 언제라도 마음이 편안하고 또 외출 중에 일이 끝나면 빨리 집에 돌아오고 싶어야 합니다 

수도회 공동체도 마찬가지 입니다. 공동체의 지체들이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항상 화목하고 평화 중에 기쁨을 누리는 공동체라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모든 공동체의 이상입니다. 기쁨을 누리는 공동체라고 해서 즐거운 공동체라는 말은 아닙니다. 기쁨을 누리는 것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 인간은 즐겁지는 않지만 기뻐할 수는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기쁘게 희생할 수 있습니다. 이 희생의 깊이가 큰 만큼 사랑도 큽니다. 사랑의 크기는 희생의 깊이와 비례합니다. 사랑이 큼만큼 더 큰 희생도 감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쁘게 희생을 감수할 때 희생 뒤에 감추어진 남모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 그 뒤에는 누군가 희생으로 봉사하는 사람이 있고 서로 희생으로 봉사하는 바탕 위에 사랑이 꽃피우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라고 할 때 기쁘게 봉사하는 희생을 감수하라는 말이 됩니다. 희생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이는 예수와 마리아와 요셉의 성가정에서 분명히 들어납니다. 요셉은 예수와 마리아를 위해서 일생을 희생하며 봉사한 분입니다. 요셉의 희생과 봉사가 아니었으면 마리아도 예수도 어떻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또 마리아도 예수 때문에 인간적으로 일생을 망친 분입니다, 처녀의 몸으로 임신을 하여 미혼모가 되었으며 그로 인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고 그 외에 수많은 어려움도 당했지만, 그것들을 극복했으나 결국은 아들이 역모 죄로 처벌받아 목전에서 죽음을 당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 때문에 당한 희생으로 성가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는 가족이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성가정을 이루십시오!’ 하는 인사는 서로를 위하여 희생을 기쁘게 받아들이십시오!’하는 말이 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희생이 감추어진 사랑의 바탕위에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공동체라야만 성장할 수 있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동체의 지체들은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께서 싹이 트고 자라고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또 크게 자라나 많은 새들이 즐겁게 노래하며 깃들이게 될 것입니다. 

현대 시대를 교회의 위기라고 말합니다. 신앙생활 특히 주일 미사와 성사 생활하는 신자의 숫자가 줄어 만가고, 성직자 수도자의 성소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또 가정들도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젊은 부부들도 자녀를 적게 또는 낳지 않으려 합니다.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납니까? 모두 이기적이고 코앞에 닥치는 희생을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선배들이 사랑에서 발생하는 기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입니다. 가정이 가족 안에서 수도 공동체가 그 지체들 간에 한마디로 하느님 나라를 살지 못하고 보여주지 못해서 입니다. 그래서 결혼이 꼭 필요하지 않다는 청년들이 전체 청년들의 거의 50%에 육박하고 있는 실정이며 성직자 수도자들의 성소도 급격히 줄어드는 실정입니다. 부부들의 이혼율은 늘어가고 아기들의 출생률은 줄어들고, 그리고 교회도 성직자 수도자들의 성소가 줄어든다고들 걱정하는데 그보다 더 급한 것은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이 사랑으로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신자들이 공동체를 떠날지도 모릅니다. 가족들도 하느님 나라를 살지 않으면 가정도 파괴될 것입니다. 수도 공동체도 하느님 나라를 살지 않으면 아무도 이 공동체를 지원하지도 이 공동체 안에서 더 이상 살려하지도 않을 것이며, 따라서 하느님께서도 많은 성소자를 보내주셔서 큰 나무로 길러주시지도 열매를 맺게도 해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가정에서나 공동체 안에서 서로 화목하고 평화로운 가운데 기쁨을 누리며 사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 9) 하셨습니다. 우리가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다면, 이루어진 평화를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평화를 이루어가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을 것이며 또한 하느님의 나라에 사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에도 여러 번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하느님의 나라가 오시며할 때마다 내가 이루어가며 살아야 하는 하느님의 나라임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희생을 극복하고 서로 사랑하며 평화롭고 화목하게 사는 그곳에, 하느님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의 나라를 키워주시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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