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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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성령강림 대축일(나해, 2015.5.24.)-장 아론 신부 15-05-25 11:12:1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760   

나해 성령강림 대축일

(요한 20,19-23)

 

지난주에 지·청원 형제들과 가야산으로 봄소풍을 다녀왔습니다. 당일 산을 오르기 전에 신발끈을 새로 묶으며 각자의 장비를 확인했습니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신분증과 인식표를 챙겨온 형제들도 있고, 소중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선크림 꼼꼼히 바르는 형제, 조난에 대비할 수 있는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입은 형제도 있었습니다.

5시간의 산행 끝에 전원이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해떨어지기 전에는 내려가야 할 텐데라고 걱정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발밑에서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운해를 보았습니다. 그날 날씨가 흐려 잔뜩 운무가 끼어있었습니다. 산을 오르는 내내 운무가 바람을 타고 우리에게 덮쳐왔습니다. 바람이 눈에 보인다면 이렇듯 일렁이는 운무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운무 덕분에 어렴풋이나마 불고 싶은 대로 부는 바람의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성령을 변화무쌍한 바람에 비유하곤 합니다. 불고 싶은 대로 부는 바람처럼 성령께서도 원하시는 대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예측할 수 없는 바람을 가둬놓을 수 없는 것처럼 그 누구도 인간의 생각과 언어로 성령을 규정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람과 같이 성령은 스스로 변화무쌍하며 다른 피조물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복음서는 다른 죄는 다 용서 받아도 성령을 거스른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성령을 거스르는 죄란 자신이 전혀 변화될 수 없다고 여기는 것, 하느님조차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보다 내가 더 위대하다는 교만과 나는 결코 변화될 수 없다는 절망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바람과 같이 불어 모든 피조물을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

늦바람이 무섭다고들 말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제자들이 늦바람이 났습니다. 춤바람도 아니고, 애인 바람도 아니고, 도박 바람도 아닌 예수님께 대한 바람입니다. 성령의 바람을 맞더니 제자들은 바람이 나서 어떻게든 예수님을 전하지 않고는 몸이 근지러워 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던 제자들이 밖으로 나가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 창조 때부터 삼위일체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함께 계셨지만 삼위께서는 시대에 따라 각각의 위격을 내새워 인간과 교류하셨습니다. 구약의 시대는 성부께서, 신약의 시대는 성자께서, 그리고 예수님 이후 시대는 성령께서 주도적으로 활동하셨습니다. 지금은 성령의 시대입니다. 언젠가 다시 성부의 시대가 오면 우리는 모두 아버지 앞에서 있게 될 것이지만 그 이전에 우리는 성령의 바람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마땅히 당신의 뜻에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7가지 은사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흔히 성령칠은이라고 부르는 슬기, 통달, 의견, 지식, 용기, 효경, 경외심입니다. 우리는 이 선물을 이용하여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기적이 일어날 때 진실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가운데 하나가 기적을 통해 얻어지는 열매입니다. 마찬가지로 참된 성령의 활동은 12가지의 결실을 맺어줍니다. 그것은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온유, 관용, 진실, 정숙, 절제, 순결입니다. 한 성령을 받아 마심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탐스럽게 맺어 다른이에게 전해 주어야 합니다. “오소서 성령님 주님의 빛, 그 빛살을 하늘에서 내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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