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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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부활 성야 미사(나해, 2015.4.4)-박 블라시오 아빠스 15-04-10 09:18:0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842   

부활성야미사

(마르 16,1-7)

 

작년 1222일 동지를 지나면서 밤은 점점 짧아지고 낮의 길이가 길어지더니, 321일 춘분에는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아졌고,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 성당으로 갈 때 마다 조금씩 길어지는 낮 시간의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루에 대략 2분 정도의 낮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우리는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보면 큰 변화가 우리와 함께 했음을 압니다. 너무나 익숙한 자연의 법칙이라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렇게 지나갑니다. 수도원 뜰에 나가보면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나무들이 불과 1주일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새로운 싹을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일들, 사건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역사를 뒤바꾼 대변혁의 시기이지만 그 안에 사는 동안에는 일련의 지나가는 사건들로만 생각되기 쉽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짧은 분량의 마르꼬 복음에서는 세 여인이 체험하고 전해주는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마르꼬 복음에서는 무덤으로 간 세 여인의 이름을 모두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박해의 순간 모두 도망친 것과 달리 이 여인들은 끝까지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고, 십자가의 수난 길과, 그분의 죽음, 그 분의 무덤 안장과, 부활 사건에까지도 함께 한 이들이었습니다.

마르꼬 복음사가는 짧은 본문에 세 번이나 때를 나타내는 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지나자’,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그리고 해가 떠오를 무렵’. 마르꼬 복음은 이렇게 때를 계속해서 언급함으로써, 달라진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어둠이 세력을 떨치던 시간이 지나가고, 죽음이 힘을 발휘하던 시간이 지나가고, 새로운 해가 떠오르는 시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어둠이 빛으로 변모되는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듯합니다.

그때에 여인들이 체험했던 상황으로 되돌아가 보면,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미리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죽은 이들에게 바르는 향유를 사서 예수님의 시신에 발라주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걱정한 것은 누가 무덤 입구의 큰 돌을 굴려내어 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무덤에 도착해 보니, 이미 그 돌은 굴러져 있었습니다. 매우 큰 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돌은 무덤 입구에서 치워져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여인들은 죽어계신 예수님이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천상의 존재로 생각되어지는 흰옷을 입은 젊은이의 선언을 통해 십자가에 못박힌 나자렛 사람 예수가 되살아 나셨고, 그 분의 주된 활동 지역이었던 갈릴래아에서 그 분을 다시 뵙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성서에서 흰 옷은 하늘을 상징하기 때문에, 흰 옷을 입은 젊은이로부터 예수님께서 되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여인들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아무런 질문도 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단순히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복음사가 누구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순간을 목격했다고 말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부활은 인간의 눈으로 생생하게 목격되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오직 신앙의 눈으로써만 증언될 수 있는 사건입니다. 지상에서 활동하시고, 구체적으로 갈릴래아에서 사람들을 만나시고 기적을 베푸시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던 그 분이,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처형되시고, 죽음에 그치지 않고 부활하셨다는 믿음 안에서만 우리는 부활하신 그 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갈릴래아는 복음이 시작되는 자리이며, 또한 그 완성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저는 지난 3월에 한국의 주교님들과 함께 로마의 사도좌 정기 방문에 참석했습니다. 모든 주교님들이 5년에 한번씩 로마의 베드로, 바오로 사도의 무덤을 참배하고, 주교단의 으뜸인 교황님을 만나 지역 교회에 대해 보고를 하는 자리입니다. 그때 교황님께서는 한국 교회는 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이므로 결코 신앙에 약해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는 너무도 교활하기 때문에 우리를 속여 넘기려 하지만, 결코 피로써 증언한 신앙의 선조들을 모시고 있는 한국 교회가 그러한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저는 로마를 떠나던 날 아침에, 로마 한 가운데를 흐르는 테베레 강 중간에 있는 띠베리나 섬을 찾았습니다. 그 섬에는 바르톨로메오 사도의 유해를 모신 성 바르톨로메오 성당이 있는데, 그곳에는 바르톨로메오 성인의 유해뿐만 아니라, 19세기, 20세기에 신앙을 증거하다가 순교한 많은 분들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시아나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 온 순교자들의 유품도 있고, 유럽의 공산주의, 나찌즘, 파시즘, 스페인 내전 중에 희생되신 분들의 유품들도 있습니다. 신앙을 목숨을 다해 증언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어서 나 스스로 아주 숙연해졌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단순히 빈 무덤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우리의 신앙은 믿기에 더욱 쉽고 알아듣기 좋았을 것입니다. 그 빈무덤이 성지가 되어 그곳을 순례하는 것만으로도 신앙이 돈독해 질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그러한 물리적이고, 역사적인 차원으로만 설명될 수 없습니다. 부활을 체험한 이들의 증언들로 전해지고, 지금 여기에서 신앙으로 체험한 사람들을 통하여 다시 전해집니다.

십자가형은 가장 비참하고 혹독한 형벌이었지만 가장 높이 들어 올려져서 현양되는 그 역설에 주목한다면, 부활의 영광이란 십자가의 죽음없이는 결코 올 수 없는 것이고 고통없이는 부활의 의미를 밝힐 수 없다는 그 역설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예수님 부활이 우리에게 삶을 밝혀주는 신앙의 진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음이 결코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믿음은 오직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파스카 신비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작년 부활 성야 미사의 강론에서도 세월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작년 성주간 수요일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입니다. 다음 주면 벌써 1년이 되는데, 아직도 세월호는 왜 바다에 가라앉게 되었는지, 왜 구조는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그 후에 알려진 수많은 의혹들은 어떻게 밝혀졌는지? 아직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있고, 자녀들을 잃은 가족들은 이 비오는 날 비닐 한겹을 덮고 길에서 잠을 청하고 있기도 하고, 진실을 알리기 위하여 삭발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로마를 방문한 한국 주교단에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제일 먼저 물으신 것이 세월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교황님께 한국의 상황에 대해 설명드리고, 각 교구별로 1주년 추모 계획과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한 주교님이 세월호 가족들에게 교황님의 안부를 전해드려도 되겠습니까? 라고 물으니, 당연히 나의 안부를 전해 주고, 아울러 교황이 한국 주교들을 만나 처음으로 한 질문이 세월호 질문이었다는 사실까지도 전해달라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교회가 신자들의 친목 단체가 아니고, 단순히 봉사활동을 하는 자선 단체나 인도적 단체가 아니라는 말씀을 수도 없이 하신 교황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근거한 참된 신앙으로 우리가 용감하게 나아가도록 거듭 당부하셨습니다. “신앙에 약해지지 말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신앙을 증언하는 사람들의 피로써 교회는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자신의 교황 즉위 다음날 추기경들에게 말씀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 앞에서 마저 긍정의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더 이상 변화될 수 없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희망과 변화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장 낮아진 것이 가장 높아지게 되는 신비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입니다. 수난과 죽음의 현장을 떠나지 않고,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는 해뜨는 새벽의 빛을 신앙 안에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새벽의 그 희미한 빛이 비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빛이 어두움을 조금씩 밀어내듯이 우리 안에 어두움이 조금씩이나마 없어지며 새로운 부활의 빛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어제 케냐의 대학교 기숙사에 난입한 이슬람 극단 무장 단체에 의해 비이슬람 학생들 140여명이 총으로 살해되었습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는 현재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살해되고 많은 이들이 나라를 떠나 헤매고 있기도 합니다. 유럽의 수도원들은 그 난민들을 수도원에 임시로 수용하는 것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시아에도 여러 국가에서 교회가 탄압을 받고 있습니다.

어두운 현실 앞에서도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며 그 분께 의탁하고,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하느님의 사랑에 의지하도록 합시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진정한 부활의 알렐루야를 외쳐 부르도록 합시다. 우리 각자의 갈릴래아에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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