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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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사순 제4주일(나해, 2015.3.15.)-장 아론 신부 15-03-16 08:09:0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378   

나해 사순 제4주일

(요한 3. 14-21)

 

한 아버지와 아들이 오솔길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따뜻한 봄기운에 앙상했던 가지는 녹빛을 토해내고 겨우내 꼭꼭 숨었던 벌레와 곤충들도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냅니다. 삭막했던 겨울 숲은 다시 생명의 기운을 폭발하기 위해 움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대화를 나누며 한창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아들이 봄을 맞아 집 정비를 하고 있던 개미들을 보지 못하고 짓밟아 버렸습니다. 발밑에 깔린 개미들은 이미 죽거나, 심하게 다쳤고 집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들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개미들을 측은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개미들을 돕고 싶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개미를 돕기에는 우리가 너무 크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아들이 생각합니다. “내가 개미가 될 수 있다면 그들을 도울 수 있을 텐데...”

아들은 개미를 측은히 여겼지만 개미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한 변신은 불가능할 뿐더러 실제로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성적으로 따져 보았을 때 그들을 돕기 위해 진짜 개미가 되고자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몇 백배, 몇 천배나 말이 안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으니 바로 하느님의 외 아드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사건입니다.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인간과 개미로는 비교할 수 없는, 우주 만물의 창조주께서 측은히 여겨 인간을 구원을 위해 인간이 되셨습니다. 사람이 회개하고 창조의 목적에 따라 하느님의 모상을 실현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기 위해 창조주께서는 스스로 사람이 되어 오시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아니라 좀 더 신적인 모습, 좀 더 전지전능한 모습으로 나타나셨다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초월적이고 장엄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셨다면 그분의 말씀에 더욱 힘이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자유의지는 확실히 적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하느님의 위대함 앞에 인간은 즉각적으로 굴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나라는 결코 강제적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다는 것은 악을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을 선택하는 데서 옵니다. 예수님께서 장엄한 모습으로 인간세계 오셨다가 사라지는 대신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그것도 실패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도 우리의 선택이 더욱 숭고하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구원으로 향하는 문이 좁다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선택할 수 있는 우리의 의지와 용기를 하느님께서는 굽어보십니다.

 

오늘 복음은 세상에 오신 아드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 심판은 활활 타오르는 지옥불이 아닙니다. 믿지 않은 자들이 받은 심판이란 바로 세상에 온 빛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리에서 이야기하는 실고失苦, 곧 하느님을 잃은 슬픔에서 오는 고통입니다. 우리를 구원해줄 구세주가 오셨는데 그분을 알아 뵙지 못한다니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우리의 구원이 바로 여기 있는데 깨닫지를 못하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악한 행실을 했기에 하느님을 잃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잃었기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이 계시지만 우리의 무지와 완고함으로 종종 하느님을 잃고 악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하느님을 등진다는 뜻이 아니라 나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하느님을 슬쩍 외면하거나 자신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하느님의 뜻을 왜곡하는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악이 깊어지면 자신의 악이 드러날까 봐 더욱 빛을 두려워하고 수렁 속으로 빠져듭니다. 한 사막교부는 악이 들어오는 것이 죄가 아니라 악이 우리 안에 머물도록 허락하는 데에 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안에 악이 머물도록 허락하고 나아가 그 악을 즐기는 것이 우리를 어둠속에 머물게 합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답게 빛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빛 앞에서 우리가 낱낱이 드러나 우리의 모든 지향이 아버지께 있음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어둠이 아니라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악습을 고쳐야 하겠습니다. 사순시기의 터닝 포인트에서 빛 자체이신 분을 맞이하기 위해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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