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HOME > 자료실 > 오늘의 강론  

  오늘의 강론  
제 목 :  사순 제1주일(나해, 2015.2.22.)-고 이사악 신부 15-02-26 11:29:1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319   

나해 사순 제1주일

(마르 1,12-15)

 

 엊그제 큰 누님에게서 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고향의 봄소식을 전한다며 누님은 수선화 사진 몇 장을 짤막한 글과 함께 보내왔습니다. 누님이 보내준 수선화 사진을 보면서 잠시나마 고향을 떠올렸습니다.


  제 고향 제주에는 수선화가 아주 흔한 꽃입니다. 이맘때가 되면 들녘 구석구석에 수선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납니다. 봄기운이 아직 덜되어, 꽃은커녕 초록빛도 구경하기 힘든 때라 수선화는 사람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수선화는 청초한 꽃모양도 그렇거니와 그 짙은 향기가 일품입니다. 모진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맨 먼저 피어나는 꽃이라 그런지, 수선화의 향기를 맡으면 한겨울 칼바람 냄새가 납니다. 수선화는 일 년 내내 푸르게 삽니다. 아무 땅에서도 잘 자랍니다. 척박한 제주의 화산토에서도 무서운 기세로 뻗어나가 경작지를 침범하기 때문에, 농부들은 수선화를 아주 싫어합니다. 제주사람들은 수선화를 몰마농이라고 부릅니다. 수선화 구근이 마늘을 닮았기에 말이 먹는 마늘이라고 합니다. 농부들에게 짓밟히고, 조랑말들에게 먹이가 되고, 그러면서도 수선화는 제일 먼저 봄을 알려주는 전령사 노릇을 합니다.

  수선화의 향기를 맡으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떠오릅니다. 미움을 받고, 푸대접 당하고, 짓밟히면서도 향기로운 삶을 사셨던 예수님이 꼭 수선화를 닮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밑바닥 인생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에게는 세상의 악취가 나지 않고 하늘 냄새가 났습니다. 사람들을 매혹시켰던 그 향기, 나에게서도 그런 향기가 풍기게 할 수 없을까 고민해봅니다. 과연 그리스도의 향기는 어디에서 나올까요? 물론 그 향기는 깨끗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일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셨던 회개입니다.

 

 회개란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느님께 돌리는 일, 깨끗한 마음에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일입니다. 회개는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불타는 열정으로 우리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나쁜 생각들을 뒤집어엎는 일입니다. 옛날 사막에서 수행했던 수도승들은 이 나쁜 생각들을 일곱 가지로 규정했습니다. 탐식, 음욕, 탐욕, 근심, 분노, 무기력, 헛된 영광, 교만, 이것들을 차례차례 없애버리면 우리는 순결한 마음의 상태에 이릅니다. 깨끗해진 마음에 하느님을 모시고 산다면 우리에게서 하늘 냄새가 날 것이요,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하지만 깊은 산속에 있는 봉쇄 수도원에서 살면서 마음이나 닦고 산다면 모를까, 싫든 좋든 세상 사람들과 부대껴 가며 살아야하는 우리로서는 깨끗한 마음을 지키고 산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아예 그자체가 불가능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보면 답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도 속된 냄새가 전혀 배지 않았던 분입니다. 예수님의 처세는 독특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사귀었고, 불합리한 관습에도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속하면서도 세상에 휘말리지 않고 사셨습니다. 참으로 유연한 마음을 지니고 사셨는데, 그분이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면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 실현시키고자 하는 굳은 신념과 의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심지가 굳센 분이면서 동시에 세상에 대한 자비와 연민으로 가득 찬분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조화를 이루면서 강력한 힘으로 분출되는데, 이 힘으로 예수님은 병든 사람을 고쳐주었고, 불쌍한 사람들을 일으키셨으며, 때로는 불의하고 위선적인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말이 복잡한데, 쉬운 말로 요약하자면 그냥 착하게 살아서는 안 되고, 독한 마음을 먹고 착하게 살아야, 예수님 닮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누가 뭐라 그래도, 누가 헐뜯고 손가락질을 해도 착한 마음, 양심을 버리지 말고 살아야만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날 것입니다.


  사순시기를 보내면서 이 정화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정진하여 깨끗한 마음에 이르고, 이 깨끗한 마음에 더러운 세상을 품어, 온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고자 하는 원대한 포부를 세워보았으면 합니다. 긴긴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봄을 기다렸던 수선화가 세상에 아름다운 향기를 선사하듯이, 우리도 사순절동안 희생과 재계를 인내로써 참아 견디어, 부활의 빛을 세상에 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추천하신 회원님 : 0 명

♡한마디의 아름다운 댓글이  관리자님과 우리 모두의 마음을 풍요롭게 합니다♡ 조회 : 2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