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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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304일 미사(2015.2.4.)- 광화문 광장- 고 박지윤 학생을 위한 미사. 15-02-09 10:58:5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089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304일 미사(2015.2.4.)- 광화문 광장- 고 박지윤 학생을 위한 미사.

 

 

계절은 돌고 돌아 새로운 봄을, 새로운 희망을 잉태하려고 하는데, 아직도 진도 앞바다의 차갑고 어두운 바다에는 진실이 그대로 가라앉아 있습니다. 이곳에 모여 함께 호소해야만 하는 답답함이,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걸어가야 하는 절박함이, 아직도 뭐 하나 속시원하게 풀린 일이 없고, 300일 내내 답답한 날들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년 416일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16일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준비하던 성주간 수요일이었습니다. 파스카 성삼일을 준비하던 시기라 내 마음도 조용한 시기였지만, 그런 참사가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큰 여객선에 설령 사고가 생긴다 하더라도 그렇게 어이없게 생명들을 잃게 되리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기에 시간이 지나면 계속 구조자 숫자가 늘겠지 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성 금요일 십자가 경배 예절을 하면서도, 지금은 몇명이라도 더 구조되었겠지라는 희망을 계속 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계속 지켜보았는데, 결국 300명이 넘는 생명이 그곳에서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우리 수도원은 2007년 성 금요일 새벽에 수도원에 불이나서 모든 것을 잃은 경우도 당해봤지만, 작년의 세월호 비극은 온 국민이 고스란히 지켜보는 와중에 일어난 일이라 그 충격은 더욱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수도원 입구에 미안합니다. 기억합니다. 기도합니다라는 추모 플랜카드를 내걸고,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를 하였는데, 사고의 아픔은 우리 수도원 안에서도 결코 쉽지 씻겨지지 않는 충격을 남겼습니다. 우리 수사님 중에서도 가만히 있으면 눈물이 나요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여러 분 계셨습니다. 추모 플랜카드는 아직도 수도원 정문에 걸려있고 우리 공동체는 희생자들을 잊지 않기 위하여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간혹 의아한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말이 빨리 빨리라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슨 일들이든지 빨리 빨리 할 수 있고, 무슨 일이든 가장 빠른 시간내에 성과를 낼 수 있는 특별한 사람들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월호 진상 규명이나 세월호 인양에는 왜 이렇게 빨리빨리와는 영 정반대의 행보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있음에도, 모든 국민들이 그 아픔을 함께 느끼고 있는데도 왜 그렇게 300일이 답답하게 지나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작년 우리나라를 방문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고통받는 이들의 사정을 들으시고 공감하시는 모습을 우리에게 줄곧 보여주셨습니다.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이웃에게 참된 친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울부짖는 이의 찢겨진 마음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비록 수도자이든, 성직자이든, 이름 있는 정치인이든, 학식 많은 지식인이든 진리의 일부분만을 겨우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 수도원에서 작년 621일에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 음악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희생자 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서명을 받고 있을 때 경북 왜관의 작은 지역이지만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세월호 진상 조사를 위한 서명을 받고, 함께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자리였습니다. 600명이 넘는 신자들이 수도원 성당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하여 이호진 프란치스코씨를 모셨습니다. 그때는 교황님께 세례를 받기 전이었습니다. 음악회 시작 전에 가족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는데, 40분 동안 성당 스피커가 찢어질 정도로 큰 소리로, 격앙된 목소리로, 답답함을, 억울함을, 분함을 안타까움을 호소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함께한 신자들은 희생자들을 위한 연도도 함께 바치고, 추모 음악도 들으려고 왔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나게 쏟아지는 이호진씨의 목소리에 무척 당황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말을 들어보니, 처음 15분 동안은 너무도 당황해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 지 몰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2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면서 그 부르짖는 소리가, 억울하게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아픔을 너무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느껴져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마르코 6,1-6)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고향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배척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 스스로도 말씀하시기를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에 가장 공감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새로운 예수님의 모습에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더 완고해져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 강론을 준비하면서, 팽목항에 다녀오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몸살이 난 몸을 이끌고 12시간가량 운전을 해서 다녀올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전에 있는 국립 현충원에 다녀왔습니다. 수 많은 군인들이 그곳에 묻혀 있습니다. 그 중에 94년에 군에서 총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제 막내 동생도 안장되어 있습니다. 내가 수도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고, 그때부터 수 많은 질문을 하느님께 던졌습니다. 10년 동안 나와 하느님과의 불편한 관계는 계속되었고, 결국 죽음을 넘어선 희망을 어슴푸레 발견을 하여 내가 그 분께 다시 라는 대답을 했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게 다시 떠오릅니다.

동생의 갑작스런 죽음을 겪었기 때문에 세월호 희생 학생들의 사연 하나 하나가 더욱 더 나에게 가슴 아프게 다가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매일 오후 416분이 되면 제 휴대폰의 알람이 울립니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잠시 멈추어서 기도를 바칩니다.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잊지 않고, 그리고 세월호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는지, 잊지않고 바라보겠다는 내 작은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가족의 품에 돌아오지 않은 이들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는지도 정확하게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이루어진 이후에야 희생된 학생들이 부모님의 가슴에라도 묻혀 편히 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딧서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능력은 수에 달려 있지 않고 당신의 위력은 힘센 자들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오히려 미천한 이들의 하느님, 비천한 이들의 구조자, 약한 이들의 보호자, 버림받은 이들의 옹호자, 희망 없는 이들의 구원자이십니다.”(유딧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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