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2주일

(요한 1,35-42)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첫 제자들에 관한 것입니다. 그 경위는 이러합니다. 요한이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보고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하니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 갔는데 예수님이 뒤를 돌아보시고 ‘무엇을 찾느냐?’고 물으시자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하고 예수님께 되물었습니다. 예수님이 ‘와서 보라’고 하시자 그들이 그날은 예수님과 함께 묵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중 안드레아는 자기 형 시몬에게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하고, 형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이 시몬을 눈여겨보며 ‘앞으로 너는 케파 (곧 베드로)라고 불릴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지어줌은 제자로 받아들이는 표지가 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안드레아가 하루 저녁 예수님과 지내놓고 어째서 메시아라고 단정해서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예수님도 한 번 본 시몬을 어째서 바로 제자로 받아들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안드레아는 뭔가에 홀린 듯합니다. 우리말로는 혼령에 씌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무엇이나 영이 시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러고 보니 영에도 악령과 성령이 있습니다. 콜로새서 3장에서 말하는 악령에 잡힌 사람은 음행, 부정, 욕망, 나쁜 욕정, 탐욕에 잡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 분노, 격분, 악의, 모독, 입에서 나오는 부끄러운 말과 거짓말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잡혀있는 사람은 하느님에게 선택된 거룩하고 사랑받는 사람답게 자비로운 동정심, 친절, 겸손, 온유, 인내롭고 은혜로이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일 것입니다.

악령에 잡혀있다는 말은 쉽게 ‘마귀 들렸다’는 말입니다. 마귀 들린 사람은 소위 7죄종이라 불리는 교만, 인색, 미색, 분노, 탐도, 질투, 게으름 등에 습관적으로 빠져있으면서도 헤어 나오려하지 않는 사람은 마귀든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는 영세 때에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영을 받아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로마 8,15-16 참조). 그런데 왜 성령을 따라 아버지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께 자리를 내어 드리지 않아서 입니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활동하실 수 있게 내가 자리를 내어 드려야 합니다. 내 안에서 성령이 활동하고 계시는 한 악령은 감히 접근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욕심에 차 있고, 이기심으로 무엇이나 행사하려 하면 악령은 즉시 내 안에 들어와 나를 차지해버릴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묵은 사람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시오. 새 사람을 입으시오,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을 따라 새로워져 (그 분의 뜻을 아는)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골로 3,9-10)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서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다면 당연히 아버지의 모상을 닮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느님의 영을 받은 표가 납니다. 언제나 그분의 뜻이 어디에 있는 지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기도대로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삼위일체이시니 성령과 일체이십니다. 그러니 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시몬을 딱 한 번 눈여겨보니 제자들의 대표감 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름을 ‘케파’라고 붙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아는 다릅니다.

그렇지만 오늘 사도 안드레아는 우리게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도 언제나 ‘나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해야 하고, 또 내가 말 한 사람을 예수님 앞에 데려와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를 또한 눈여겨보실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그 또한 성령께 마음을 열어야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살아가는 모든 모습이 ‘나는 메시아를 만났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났을 뿐 아니라 그분과 성체성사를 통하여 일체가 되었습니다. 그분의 살이 내 살이 되고 그분의 피가 내 혈관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있으며 하느님의 모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잊고 산다면 하느님의 자녀 될 자격이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성령을 받은 사람답게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살아가도록 합시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하면 하느님의 모상 따라 사는 것이 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따라 아직도 벗어버리지 못한 육에서 나오는 죄스런 옛 사람을 온전히 벗어버리고 성령에 따른 새 사람을 입읍시다.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모상을 닮아가는 것은 아버지께도 기쁨이 되고 또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될 것입니다.

한 번에, 하루아침에 잘 되지 않더라도 꾸준히 노력하며, 내 혈관에는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의식하고 살아간다면, 미구에 묵은 행실과 사람을 하나씩 벗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의 성령에 잡혀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례성사의 은총이 날로 더욱 풍성해지고 항상 나와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