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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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나해)-고 이사악 신부 14-12-31 08:44:2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475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루카 2,22-40)

 

제가 수도원에 들어와서 수도공동체로부터 받은 가장 큰 혜택은 첫서원을 마치고 로마로 유학을 간 것입니다. 물론 그때는 감당하기 힘든 십자가였지만 그때의 체험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제가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무튼 로마에 머무는 동안 서원장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저를 믿어 준 수도공도체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야말로 머리 빠지게 공부를 했는데, 정말로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즈음, 원형탈모증에 걸려 머리에 오백원짜리 동전만한 구멍이 몇 개 생겼습니다. 

로마 유학생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로마 유학을 가면 머리가 하얗게 세서 돌아오는데 머리 나쁜 사람이 로마 유학을 가면 머리가 빠져서 돌아온답니다. 제 머리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좋지 않은 머리로 공부를 하려니 매일 매일이 전쟁 같았습니다. 로마에서 3년 정도 살았는데도 공부에 치여 시내 구경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게다가 로마 시내 유적지나 관광지의 입장료가 너무 비싸 빠듯한 용돈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 유명한 콜로세움도 제가 머물던 성 안셀모 수도원 근처에 있었지만 겉에서만 구경했지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주로 공짜로 들어갈 수 있는 곳만 찾아 다니곤 했는데 그중에 대박은 바티칸 박물관입니다. 바티칸 박물관은 매월 마지막 주일에는 입장료를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관람시간이 9시부터 12시 반까지 제한되고, 또 저처럼 공짜를 밝히는 사람들이 무지 많이 몰린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갔을 때는 사전 정보가 없어 입장 시간에 맞추어 갔는데 줄이 거짓말 안 보태고 1km는 넘었습니다. 줄을 서서 두 시간을 허비하고 들어가니 남은 시간은 고작 1시간 남짓, 어쩔 수 없이 대충 둘러보고 나왔는데 무얼 봤는지 기억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로마에 왔으면 뭐라도 보고 와야 하는데, 결국 평일에 돈을 내고 들어가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하루 종일 둘러보기는 했지만 전시물이 워낙 많은지라 역시나 기억에 남는 작품은 별로 없었습니다. 교과서에서 보던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보는 순간에는 감탄이 나오지만, 돌아서면 무엇을 보았는지 가물가물했습니다. 엇비슷한 작품들이 많아 금방 눈에 식상해진 탓일 겁니다. 그렇지만 현대종교 미술 컬렉션에 가보니 강한 인상을 주는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몇 작품은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깊은 인상을 주어 제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작품명이 성가족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 에집트로 피난가는 성가족을 형상화한 조그만 청동 조형물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서 당나귀 등위에 앉아 있고, 요셉 성인은 고삐를 움켜쥐고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이었습니다. 흡사 세찬 바람이 불어오기나 하는 듯 성모님은 아기 예수님을 안은 채로 몸을 뒤로 돌려 웅크리고 앉았고, 요셉 성인도 고개를 숙이고 힘겹게 한 발을 떼고 있었습니다. 바람에 펄럭이는 듯한 요셉 성인의 옷자락이 사실감을 더해주었습니다. 그 작품 앞에서 한참이나 머물렀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앉아 당나귀 등에 위태롭게 앉아 있는 성모님의 모습도 애처로웠지만, 제가 보기에는 고삐를 쥐고 앞장 선 요셉 성인의 모습이 더 짠해 보였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힘겨운 세파를 물리치며 묵묵히 나가는 한 가장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우리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제 나이 때 벌써 홀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5남매를 거느린 가장이었습니다. 해질녘 밭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마루에 걸터앉아 물끄러미 마당을 바라보며 소주잔을 기울이던 아버지 모습에 요셉 성인의 얼굴이 겹쳐졌습니다. 그렇게 사셨구나, 어린 목숨들을 거두기 위해. 쓰디쓴 인생을 삼키며 애면글면 생명을 키워내 하느님께 바치셨구나. 가족하면 흔히 정겨움이라는 단어가 연결되었는데, 그때 처음 가족에 숭고함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갓 태어난 한 생명을 필사적으로 보호하려는 성모님과 요셉 성인의 모습은 가슴 벅찬 감명을 주었습니다. 진정한 가족이란 이런 모습이구나 하고 작품 속의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제게 말없는 가르침을 던져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시대의 가정에서 숭고함의 미학을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최근에 개봉되어 화제를 불어일으킨 님아 그 강물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에서 백년회로한 노부부의 잔잔하고도 아름다운 삶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영화 같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통계청 수치에 따르면 작년 한 해 3228백쌍이 혼인을 했고 1153백쌍이 이혼을 했습니다. 물론 현재 일어나는 모든 가정파탄의 원인을 이혼 때문이라고 탓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튼 우리 사회의 많은 가정들이 어려움을 겪고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상임에 틀림없습니다.

이혼이나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무너지는 가정들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는 오랩니다. 전통적인 윤리와 가치관들이 바뀌면서 일어나는 현상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중심으로 한 산업사회의 근본적인 한계와 약점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이제 가정은 전통사회에서 맡았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전통사회에서 가정은 경제적 생산단위이면서 동시에 자녀양육, 교육, 환자보호, 노인부양 등의 역할까지 맡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아기들은 엄마 품에서 벗어나 어린이집에서 큽니다. 아이들은 아버지 무릎 아래서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삶의 기술들을 배우지 않고, 국가가 일방적으로 가르쳐주는 사상과 지식만을 머릿속에 채워 넣습니다. 아픈 이들은 가족과 함께 있지 못하고 돈을 주고 고용한 간병인의 간호를 받습니다. 빛나는 인생의 지혜로써 권위를 존중받던 노인들은 요양병원으로 가서 하루 종일 시간이나 죽이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평생을 살았던 자기 집에서 임종하지도 못하고, 세상과의 마지막 작별을 장례식장이라는 자신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장소에서 합니다. 가정은 단지 합숙소나 고작 휴게실 역할 밖에 하지 못합니다.

하루 종일 온 가족이 밖에서 지내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옵니다. 집에 돌아와 공장에서 생산된 인스턴트 식품으로 배를 채우고, 바보상자에게 넋을 빼앗기다가 눈을 부치고 다시 집을 나섭니다. 사람들은 그저 돈만 벌면 됩니다. 나머지 일들은 돈만 지불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다 해결됩니다. 가족들 간에 정과 사랑으로 이루어지던 일들마저 지금은 몇 푼의 돈을 지불하고 끝을 냅니다. 그렇게 셈해버리고 나면 편하기는 합니다만, 과연 나중에 무엇이 남을까 걱정됩니다. 예전보다는 몇 곱절이나 편하게 삽니다. 가정의 모든 대소사가 간소화되었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가족을 위해서 돈을 번다고 하면서도, 바빠서 부모님을 못 찾아뵙고, 바빠서 부부간에 서로 이야기 할 짬도 없으며, 바빠서 아이들이랑 놀아주지도 못합니다. 너무 바빠서 무엇이 우선인지도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바빠서 성당에도 나오지 못합니다. 바빠서 우리 영혼을 구원할 시간이 없어졌다고 해도 맞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영원히 숨을 헐떡거리고 돈만 쫓으며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나자렛 시골 마을 별 볼일 없는 목수네 집이 성 가정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가족 전체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찾아 살았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구심점이 하느님께 있다면 가족이라는 편협한 혈연적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나와 피를 나누지 않은 사람이라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가족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시대가 회복해야 할 가족의 모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근접한 새로운 체제를 모색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최상의 질서라고 생각하는 소비위주의 자본주의 체제나, 국가 중심의 정치체제는 이미 한계를 드러내 보였습니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체제의 한 부속품으로써 소모되지 말아야 하며, 존엄한 존재로써 존중받아야 합니다. 특정 계층에 의해 재화와 자본이 독점되거나, 금전과 재물이 하느님처럼 숭배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한 가족이 되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하느님을 섬기는 그런 시대가 와야 합니다. 시메온과 안나가 성전에서 거룩하게 지내며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린 것처럼, 우리도 더욱 열심히 신앙을 실천하면서 그 날이 오기를 기다려야겠습니다. 또한 우리 각자의 가정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평화와 아름다움이 실현될 수 있도록 서로 힘껏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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