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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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예수 성탄 대축일 밤미사(나해)-박 블라시오 아빠스 14-12-28 09:55:1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194   

성탄 밤미사(나해)

 

며칠 전 낙동강 건너편에 있는, 우리 수도원 신부님이 사목 하시는 본당을 방문하였습니다. 성당은 도시의 본당처럼 큰 본당은 아니고 연세드신 분들이 많으신 전형적인 시골 본당입니다. 성탄절이 임박해서인지, 성당 앞마당에 있는 성모님을 중심으로 사월초팔일에 절에 연등을 달아 놓듯이, 등을 쭉 달아놓았습니다. 왜 이렇게 절처럼 등을 달아놓았느냐고 물으니까, 가족들이 소원을 적어 등을 봉헌하면 그 돈을 모아서 주위의 가난한 이웃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동사무소의 협조를 받아서 신자가 아닌 가난한 이웃들이나 혼자 사시는 노인들에게도 지원을 해 주었다고 본당 신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많은 등 중에 하나가 눈에 딱 들어왔습니다. 등 둘레에 짚으로 만든 새끼줄을 두르고, 득남을 알리는 붉은 고추를 달아놓은, 어떤 가족이 봉헌한 등이었습니다. 사내 아이가 태어나면 그렇게 대문에 금줄을 달던 것을, 예수님 태어나신 것을 경축하며 그렇게 등을 달아 놓았습니다.

어릴 적에, 애기가 어떻게 생기고 태어나는지도 몰랐을 때, 숙모가 4촌 동생들을 낳던 일들이 기억이 납니다. 시골집이라 부엌의 가마솥엔 뜨거운 물을 끓이고, 동네에서 아이를 잘 받는 할머니가 오시고, 다른 가족들은 그 근처에도 가지 못했지만, 멀찌이 떨어져서 아기의 울음소리만 들리기를 기다리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산고를 겪던 숙모의 비명 소리가 밖으로 들리는 것을 어린 나이에도 근심스럽게 들으며 기다리던 기억이 납니다. 온 가족이 긴장하고 마음 졸이다가 아이의 울음이 터지고,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다는 말을 들으면 온 가족이 안도하고, 기뻐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오늘 밤 우리는 2000년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장엄하게 그것을 기억합니다. 단순히 오래된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전례 안에서 바로 오늘, 바로 이 시간우리에게 탄생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우리가 화답송으로 노래 불렀던 것 처럼 오늘 우리 구원자 주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예언자가 말씀하신 대로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당신께서는 즐거움을 많게 하시고, 기쁨을 크게 하십니다. 사람들이 당신 앞에서 기뻐합니다.”

새로운 희망의 탄생을,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간절히 기다리던 우리에게,,, 애타게 기다리던 우리에게, 구세주께서 탄생하십니다. 새로운 아이의 탄생에 온 가족이, 친지들이 기뻐하듯, 사람이 되신 말씀의 탄생에 우주 만물이 놀라고 기뻐합니다. 태어나신 분은 우리와 같은 참된 인간이시며, 동시에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아기의 탄생이 어떠한지 생각해 보면, 하느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데 갓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시는 그 신비와 만나게 됩니다. 아기는 자기 자신을 보호할 아무런 수단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전적인 보호와 도움 없이는 온전하게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이 왜? 자기 자신조차 지킬 수 없는 가장 약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을까 묵상하게 합니다. 전능하시고 천지의 창조주이신 분이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심에 대해서 묵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둘레를 돌아보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들, 영향력 있는 사람과 그 영향력에 휘둘리는 사람들, 많이 가진 사람들과 적게 가진 사람들,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상대적인 박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 등등수 많은 일들이 우리 주위에서,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고, 수 많은 갈등들이 벌어집니다. 그러한 갈등은 미움과 증오를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갈등의 상황에서는 누구든지 자신을 지키려고 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기려고 하지 않고, 온갖 것으로 자신을 방어하려 합니다. 여기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자신만 돌아볼 뿐 사랑과 배려는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직업없이 방황하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 많이 있고, 직장을 잃은 사람들,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 병으로 시달리는 사람들,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구라도 내 소리를 들어달라고 외치는 사람들, 좌절하여 고독의 어두움 속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 높은 굴뚝 위에서라도 외치는 사람들, 자식을 잃은 포구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우리에게 주어진 고귀한 자유라는 것이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불행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이 밤에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이 거룩한 밤에, 이 고요한 밤에 우리는 사랑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을 다시 일깨울 수 있을 것입니다. 미움과 경쟁, 갈등, 무관심의 반대 편에 사랑이 숨쉬고 있음을 우리는 또한 이 밤에 발견합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전적인 맡김이 있고, 신뢰가 있습니다. 돌봄이 있고 배려가 있습니다. 가장 약한 모습이라도 무시되거나 위험에 빠지지 않습니다.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가장 본질적인 사랑의 속성을 체험하게 됩니다. 비록 베들레헴의 여관도 아닌 구유의 포대기에 누워계시지만, 사랑과 평화와 기쁨이 충만한 성가정의 모습을 우리는 복음에서 들었습니다. 천사와 수 많은 하늘의 군대의 찬미 속에 아기 예수님은 충만한 사랑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지금의 현실 속에서 좌절하기도 하지만,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는 이유를,,, 희망이 비록 어딘가에서 작은 틈으로 스며들어오는 빛처럼 어슴프레하게 느껴지더라도 우리에게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씨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곁에 무력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 순산이든 난산이든 생명 그 자체가 기쁨을 가져옵니다. 어떤 작가는 세월호에서 죽어간 아이들을 생각하며 하늘나라에서 태어나기 위하여 참으로 난산을 하였구나 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분도출판사에서 얼마전에 출간한 수도원 기행에서 공지영 작가가 한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아들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통하여 충만한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의 생명에 참여하는 우리는 세상 곳곳에서 희망을 잉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사랑을 낳기 위해서는 난산의 어려움과 고통을 겪어야 할 지 모르지만, 그 고통은 새로운 생명에 대한 기쁨을,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약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우리의 희망과 사랑을 나누는 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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