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헌생활의 해 개막 미사

강론 : 박 블라시오 아빠스

제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인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식이 있었던 저녁의 장면이 생각납니다! 62년 10월 이었지요. 로마의 신자들이 횃불을 들고 공의회를 위해 기도하며 성 베드로 광장으로 몰려왔습니다. 요한 23세 교황님께서는 집무실 창문을 열고 이 놀라운 광경을 보시고 감동하셔서 예정에 없이 그들을 강복하시기 위하여 마이크를 잡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장면을 격정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하늘의 달도 이 놀라운 장면을 보기 위하여 서두르고 있습니다’. (참고. YouTube에 접속하셔서, 'discorso della luna’를 입력하고 검색하면 여러분들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첫날 밤의 감동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많은 수녀님들이 이 성전을 가득 채운 것을 보고 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놀라운 장면을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봉헌생활의 해’를 개막하는 뜻 깊은 자리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대림 제1주일부터 시작된 보편 교회의 ‘봉헌생활의 해’는, 2016년 2월 2일 주님봉헌축일에 폐막합니다. 한국교회에서도 서울, 대구, 광주 지역을 중심으로 개막 미사를 봉헌하며, 이 시기 동안 우리의 삶에 대해 성찰하는 은혜로운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지난 11월 21일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회에 대한 교의헌장’(교회헌장)인 ‘인류의 빛’ (Lumen Gentium)이 반포된지 5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교회 헌장 6장에서는 ‘수도자’들에 대하여 적고 있는데, 축성 생활의 본질과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도생활에 대한 공의회의 또 다른 문헌인 ‘수도생활의 쇄신에 대한 교령 완전한 사랑’(Perfectae Caritatis, 1965. 10.28)은 내년 10월, 반포 50주년을 맞게 됩니다. 교령 ‘완전한 사랑’에서는 공의회 이후 수도회 쇄신의 일반 원칙과 쇄신의 실천 기준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50년 전 이맘때는 교회에 새로운 활력, 성령의 입김을 불어 넣은 바티칸 공의회가 마지막 한 회기를 남겨두고 그 폐막을 향하여 종종걸음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인류의 빛’과 ‘완전한 사랑’ 사이의 1년을 봉헌생활의 해로 경축하며, 이 해가 지니는 여러 의미들을 한번 돌아보아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십여 년 전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아마 부제반 때였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세미나 발표시간에, 저는 수도생활에 대한 부분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수도자 신분은 평신도도 아니고, 성직자도 아닌 고유한 신분이라고 말을 했는데, 부제님들의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그런게 어딨냐는 것이었습니다. 평신도면 평신도고, 성직자면 성직자지 제3의 신분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교회내 신분을 구분할 때 서품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에 따라 구분을 하는 것이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 모양입니다. 동기 부제님들의 논리는, 예를 들어 남자 수도회 안에서 서품을 받은 사람은 성직자고, 서품을 받지 않은 평수사님은 평신도라는 논리를 이야기했습니다. 평신도라고 하기에는 약간 맞지 않는 점도 있는 것 같은 뉘앙스인데, 그래도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님, 열두 사도단의 후계자들인 주교님들, 주교님들의 협력자들인 사제들, 부제들, 그리고 성직에 참여하지 않는 평신도들. 이렇게 교계제도를 이해하고 있으니, 수도자들은 어디에 집어 넣을지가 막연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럼 수도자들은 사제와 평신도 사이의 어디쯤에 위치? 이런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도자들은 ‘본성상 성직자도 아니고 평신도도 아니다’라는 말을 했는데, 도통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1996년에 나온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사도적 권고 ‘봉헌생활’에 나오는 말을 인용해 주었습니다. 60항에 보면, “교회의 전통 교리에 따르면 축성생활은 본질상 성직자도 아니고 평신도도 아닙니다. 이러한 까닭에 ‘남녀 평신도들의 봉헌’은 복음권고의 선서에서 그 자체로 완성된 신분입니다”. 그래도 미심쩍어 하기에, 교회법전에 나오는 구절까지 들이댔습니다. 교회법 제 588조에 보면, “축성생활의 신분은 본성상 성직자도 아니고 평신도도 아니다”라고 딱하니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우리 동기 부제님들을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하고 찝찝하게 설명을 하고 지나간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어제부터 시작해서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 성직자도 아니고 평신도도 아닌’ 우리의 고유한 신분에 대해 숙고하며,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11월 21일 복되신 동정녀의 자헌 기념일에 모든 축성생활회 회원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이 봉헌생활의 해의 목적이 무엇인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교황님께서는 봉헌생활의 해의 목표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과거를 돌아보고’(“guardare il passato con gratitudine”), ‘열정을 갖고 현재를 살아내며’(“vivere il presente con passione”), ‘희망으로 미래를 껴안는 것’(“abbracciare il futuro con speranza”)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은 ‘하느님의 손길이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 어떤 개인들을 더 친밀하게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불러주시고, 특별한 삶의 방식을 통해 복음을 번역하게 하시고, 신앙의 눈으로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게 하시고, 교회의 필요성들에 창의적으로 응답’하게 하셨는지를 살피고, 창립자의 정신과 수도회 역사를 돌아보며, 이런 다양한 은사를 교회에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현재를 열정을 갖고 산다는 것’은 우리가 친교와 일치의 전문가가 되어 복음의 가르침을 이 세상에 전폭적이면서도 충실하게 퍼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망으로 미래를 껴안는 것’은 우리가 믿는 희망은 예측 가능한 통계치나 이미 우리가 이룬 성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이란 아무것도 없으신 하느님 한 분께 우리의 믿음을 두는 것, 결코 하느님은 우리를 실망시키시지 않는 분이란 사실에서 오는 희망입니다.

교황님께서는 봉헌생활의 해에 거는 기대들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에 대해서도 제시해 주고 계십니다. 먼저 수도자들은 ‘기쁨의 사람들’입니다. ‘수도자들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다’는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이 하신 말씀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언급하시며, 그리스도인은 기쁨을 나누는 사람, 아름다운 전망을 보여주는 사람, 그리고 풍요로운 잔치에 다른 이들을 초대하는 사람이며,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개종을 강요해서가 아니라 이것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복음의 기쁨 14 참조). 축성생활회원들은 “친교의 전문가들”이고, 친교의 영성을 실제로 살아가면서, 우리가 속한 교회를 ‘친교의 가정’과 ‘친교의 학교’로 만들어야 합니다. 친교란 ‘다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신비’이고, 이것은 우리의 삶을 거룩한 순례로 만듭니다. 만나고, 대화하고, 주의깊게 경청하고, 서로 도와주는 삶을 통해서 친교의 영성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철저하게 살아가는 것은 수도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 과제입니다. 그렇지만 축성생활자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이러한 복음적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이것이 예언자적 방식의 삶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예언과 예언자의 역할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으며, 이것이 축성생활이 다른 신분과 구별되는 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 예언자적인 행동으로 우리들에게 ‘세상을 깨우십시오’라고 외치십니다. ‘세상을 깨우십시오’ (‘Svegliate il mondo!’ ‘Wake up the world!’).

그리고 또 다른 당부 말씀으로 ‘세상의 모든 곳으로 가십시오’라고 말하십니다.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 어려움에 처한 가정들, 버려진 아이들, 미래가 없는 젊은이들, 나이든 이들, 병들거나 버려진 이들, 세속적으로 부유하나 내적인 빈곤에 빠진 이들, 인생의 의미를 찾고 있는 사람들, 거룩함에 굶주리고 있는 이들… 하느님과 오늘날 사람들이 우리의 축성생활 공동체에 요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질문해 보며, 우리가 이런 이들에게 다가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1독서와 2독서에서는 기쁨과 위로와 평화의 메시지가 울려퍼집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도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던 그 처음으로 돌아가보면, 우리 생활이 지닌 아름다움, 친교의 기쁨, 삶의 의미, 시대를 거스르는 가치를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더욱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에 뿌리내린 삶이 얼마나 단순하며 놀라운지 각자의 체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어제와 똑 같은 하루를, 별 의미 없이 보낼 수도 있고, 우리 생활의 가치를 잊어버리고, 때로는 놓아버리고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은혜로운 시기는 우리에게 재촉합니다. 기쁘하고 놀라워하고, 경탄하며, 감사하고, 나를 내어주고 형제자매를 받아들이며, 일치하고 서로 축복해 주고, 귀기울여주고, 협력하며, 느슨해진 우리 삶에 의욕과 열정과 매력이 넘치게 하고, 역동성을 회복하게 하며, 자기희생과 헌신, 소명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하고 매순간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재촉하고 있습니다.

50여년 전에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신 요한 23세 교황님께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하느님 백성 모두를 위한 ‘새로운 성령강림’이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이 은혜로운 해가 우리에게 새로운 성령강림과도 같은 은혜로운 시기가 되어, 우리가 친교의 사람으로 거듭나고, 세상을 흔들어 깨우며, 세상 모든 곳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