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HOME > 자료실 > 오늘의 강론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 제 23주일(가해, 2014.9.7.)-고 이사악 신부 14-10-06 07:55:0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436   

가해 연중 제23주일

(마태 18,15-20)

 

어느 공동체나 분란을 일으키고 말썽을 피우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같은 피를 나눈 형제들끼리 혹은 같은 신앙을 가진 교우들끼리 얼굴 붉히며 잘잘못을 따지고 언성을 높이기도 그렇고,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하지 그지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런 경우에 대처하는 방법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죄를 짓은 형제가 있거든 단둘이 만나 타이르고, 그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증인으로 삼아 경고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말마저 듣지 않는다면 교회에 알리고, 교회의 충고마저 무시한다면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대하라고 합니다.

그냥 듣기에는 잘못을 저지른 형제에 대한 응분의 제재 조치로 보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신경 써서 들어보면, 이 말씀이 자기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있으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고, 원수마저 사랑하라고 했던 예수님의 평소 말투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대목은 예수님께서 직접하신 말씀이 아니고 초대 교회의 관습이 복음에 흔적을 남긴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시기보다 순수한 사랑으로 불타 올랐던 초대 교회 공동체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무조건적인 용서와 적극적인 화해를 요구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현실적으로 실천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말이 쉬워서 일곱 번씩 일흔 번이지, 어떤 형제가 나에게 사소한 말이라도 실수를 한다 치면 용서는 커녕 삐져서 한 주간이 지나도 그의 얼굴을 보기 싫은 게 우리 심정입니다.

더욱이 공동체 생활에서는 형제적 사랑이라는 당위명제가 있더라도 잘못된 길로 엇나가는 형제들을 그냥 보아 넘길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의 기강이 흔들리고, 공동체의 평화와 안정이 깨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부 성 베네딕도의 수도규칙은 잘못을 저지른 형제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하여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23장 잘못에 대한 파문에 대하여부터 30장 나이 어린 소년을 어떻게 책벌할 것인가까지 베네딕도 성인은 수도규칙 전체 72장 가운데 여덟 개의 장을 할애하여 잘못을 저지른 형제들의 교정 절차와 방법을 언급합니다. 수도규칙에 나오는 교정절차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4단계 즉, 단둘이 만나 타이름, 두세 사람이 함께 타이름, 교회를 통한 제재, 그리고 파문을 인용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가서는 더욱 엄격합니다.

큰 잘못을 저지른 형제들은 공동 식탁과 성당에서 제외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심한 단식이나 혹독한 매질로써 벌을 주어 고치게 하고, 책벌을 통해서도 잘못을 고칠 가망이 없다면 그 형제를 공동체에서 쫓아내라고까지 합니다. 수도규칙은 교정 절차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는 병든 한 마리의 양이 온 양떼를 전염시키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결국 교회의 충고를 무시하는 사람을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무시하라는 복음의 말씀이나, 절단의 칼을 사용하여 병든 지체를 잘라버리라는 베네딕도 성인의 지침은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고육지책인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잘못한 형제들을 밀밭의 가라지처럼 뽑아 내는 방식의 교정은 예수님의 정신에 맞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주 쉬운 해결책이며 이미 가지고 있는 공식, 규칙과 규정들 뒤에 숨어 확실한 안전을 선택하려는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법규, 규정, 쉬운 해답 뒤에 숨었던 사람들과 맞서 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방식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들판을 헤매는 것입니다. 이는 파문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하기까지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알려주는 베네딕도 수도규칙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연로하고 지혜로운 형제들을 보내어 흔들리는 형제를 남모르게 위로하고, 겸손되이 보속할 수 있도록 권유하며, 지나친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그를 위로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사도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에게 사랑을 더 베풀 것이며, 또 모든 이는 그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단순히 잘못한 형제에 대한 처벌이나 교정에 대한 측면이 아니라 공동체의 본질에 대한 통찰에 이르게 됩니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연대와 책임입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마치 성벽의 돌들처럼 촘촘이 서로 기대거나 떠받치며 공동체를 이룹니다. 조그만 돌 하나라도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성벽은 결국 그 조그만 공백과 일탈 때문에 무너지고 맙니다. 공동체 구성원 상호간의 연대의식과 책임의식 없이는 공동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공동체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고 이익을 공유하기 위하여 결성된 조직이라기 보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의 연대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목표를 잃거나 혹여 다른 길로 빠지지 않도록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애정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형제의 일탈은 곧 공동체 전체의 위기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도 우리가 자신의 삶뿐 아니라 타인의 삶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준엄하게 말합니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할 때, 네가 악인에게 그 악한 길을 버리도록 경고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기 죄 때문에 죽겠지만, 그가 죽은 책임은 너에게 묻겠다.” 하지만 이 말을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고 잘못을 저지른 형제를 계도하라는 뜻으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흔들립니다. 간혹 흔들림을 주체하지 못해서, 아니 이 흔들림을 잡아 주는 형제가 없어서, 엄밀히 말하면 아무도 기댈 어깨를 대주지 않아서 약한 형제들이 쓰러질 뿐입니다.

삶의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형제를 바로 잡는 일을 장상들의 책무라 여기고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반면에, 자기 눈에 거슬리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형제들의 행동거지를 지적하고 고치려고 드는 우리의 모습을 자주 발견합니다. 조그만 일에도 민감하여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품성으로 변하는 것이 수행자들의 병폐이기는 하지만, 수행에 있어 궁극적으로 다달아야 하는 경지는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하고 너그러운 마음입니다. 다른 형제의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라는 베네딕도 성인의 말씀대로 우리가 형제적 사랑으로 참아 넘겨야 할 것들은 일상에서 발생하기 마련인 소소한 불편들입니다. 또한 수도서원을 통해 맺어진 형제적 유대 안에서 서로의 잘못에 대한 용서와 화해는 누가 먼저 청하기 전에 베풀어 주어야할 기본적인 자세이기도 합니다. 물론 용서와 화해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베푸는 일방 행위가 아니라 상호간에 이루어지는 쌍방 행위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가해자가 먼저 용서를 구하는 모습은 흔치 않습니다. 도리어 자신이 피해자고 상처를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청하는 일과는 별개로 우선 본인 마음의 빗장을 풀고 응어리진 상처를 치유해야 화해가 가능합니다.

어쨌든 서로가 서로에게 실수하고 잘못하는 상황에서 누가 누구를 용서하고 교정할 처지는 아니지만, 어떤 형제가 수도생활의 중심과 목표를 잃고 있다면, 일상적인 관심을 넘어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간섭하고 교정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교회나 수도회 같은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뚜렷한 중심과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예수님께서 걸었던 길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사람들의 결합체입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라는 복음 말씀처럼 수도공동체 일치의 구심점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하나로 모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공동체의 일치와 조화는 어떤 형제의 잘못으로 깨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깨진 공동체의 일치와 조화, 그 자체에서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그만큼 멀어졌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누구에게 탓을 돌리기 전에 각자의 삶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연대와 책임 그리고 용서와 화해를 통해 우리는 공동체 삶을 유지할 수 있고, 공동체 삶에서 이루어지는 사랑과 친교 그 안에 하느님은 현존합니다. 우리 수도 공동체 역시 서로의 약점을 이해하고 장점을 나누며 주님을 찾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서로 충고하고 다독이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다른 형제에게 관심을 보이고 배려하는 만큼 자신에게 들려오는 뼈아픈 충고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성숙한 신앙 공동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수도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고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며 더 나아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거듭나길 소망합니다. 아멘

추천하신 회원님 : 0 명

♡한마디의 아름다운 댓글이  관리자님과 우리 모두의 마음을 풍요롭게 합니다♡ 조회 : 2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