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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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주님 수난 성금요일(가해, 2014.04.18.)-인 끌레멘스 신부 14-04-23 20:37:3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250   

가해 주님 수난 성금요일

 

7년 전 성금요일 새벽 우리 공동체는 화재로 큰 아픔을 겪었습니다. 오늘은 또 다른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로 수많은 사람들, 그것도 어린 생명들이 죽음의 깊은 바닷물 속에서 산산조각 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와 온 국민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원인이 어떻게 되었든, 이 고통과 이 슬픔의 눈물을 누가 닦아주고 위로해 줄 수 있겠습니까?

 

이 허망한 죽음과 고통 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주님의 십자가를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거기에 마음을 일치시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한테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무엇보다도 십자가는 우리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폭로합니다. 우리 자신의 겉모습을 적나라하게 벗겨버립니다. 제 자신을 비롯하여 우리는 말로는 나는 죄인이다’ ‘내 탓이요라고 하지만, 어떤 사안에 부닥치면 내 자신이 죄인인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의인인 양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다가 내 자신이 남들한테 조금이라도 모욕 당하고 업신여김을 받아 자존심이 상하면 참지 못합니다. 폭발합니다. 불평과 비난과 거친 언어의 화살을 쏘아댑니다. 더 나아가 의도적으로 우리 자신의 허물을 남들 앞에 끊임없이 감추고자 합니다. 그럴싸하게 포장합니다. 십자가는 이러한 포장지를 벗겨버립니다. 우리를 벌거숭이로 만들어버립니다.

 

우리 자신을 벗겨버리지 않는 십자가는 우리 자신들이 만들어낸 거짓 십자가입니다. 주님이 매달리신 참된 십자가 아래 있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참으로 죄인임을 깊이깊이 자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죄와 허물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죄인인 내 자신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의 무게와 깊은 침묵 앞에 우리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 베네딕도 성인은 당신의 규칙서 겸손의 장에서 정제되지 않은 단어를 사용하면서 우리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일깨워줍니다. “나쁘고 부당하고 쓸모없는 종, 짐승과도 같은 처지에 있는 존재, 사람도 아닌 벌레, 사람들의 조롱거리, 백성들의 천덕꾸러기라고 합니다. 이처럼 베네딕도 성인은 우리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라고 초대합니다.

 

이제 십자가는 두 개의 목마름이 서로를 만나는 장소가 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이 목마름은 단순히 육신적인 갈증이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목마름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당신의 사랑을 깨닫기를 애타게 원하는 주님의 목마름입니다. 또 한편 이 목마름은 죄인인 우리 자신들의 목마름이기도 합니다. 죄와 허물과 나약함에서 우리를 해방시킬 유일한 분, 바로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근원적인 목마름입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의 목마름과 우리 인간의 목마름은 이렇게 서로 만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주님과 우리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구원의 중심, 사랑이 터져나오는 원천이 됩니다. 십자가는 하느님과 우리가 사랑으로 하나되었음을 드러내는 징표입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은 우리를 위해 당신 사랑을 내어주시고 우리는 하느님께 우리의 사랑을 내어드리는 사랑의 자리입니다. 십자가의 삶을 살 때 이제 우리는 예수님처럼 죄인인 우리 자신을 다른 죄인들을 위해 내어주는 사랑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 참으로 두 손 모아 지금 아픈 사람들,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우는 사람들, 지금 죽음의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드러난 사랑은 우리 모두를 죽음의 아픔을 넘어 생명의 기쁨으로 인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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