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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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사순 제5주일(가해, 2014.4.6) - 최 시몬 신부 14-04-11 08:31:3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199   

가해 사순 제5주일

(요한 11,1-45)

 

모든 생명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향해 살아갑니다. 죽음은 인간이 태어나던 태초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는 문입니다. 이를 기념하고자, 재의 수요일에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며 이마에 재를 얹었습니다. 이 말은 인생의 허무를 주지시키는 말이 아닌 인간은 하느님에게서 와서 하느님에게도 돌아가는 존재임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처음 하느님의 손길이 닿은 그 순간, 진흙을 빚어 인간이 되게 하신 그 순간으로 돌아가 인생을 성찰하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성찰을 돕고 믿음을 강화시켜 주시기 위해서 오늘 예수님은 라자로를 무덤에서 살리십니다. 라자로를 무덤에서 살리셨다는 것은 부활신앙에 대한 믿음입니다.

 

때로는 우리들도 마르타와 마리아와 같이 가장 사랑하는 나자로의 죽음으로 슬픔과 괴로움, 고통의 시간을 보냅니다. 이러한 마음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은 마리아도 울고 또 그와 함께 온 유다인들도 우는 것을 보시고 마음이 격앙되어 라자로의 죽음을 슬퍼하십니다. 그리고 무덤으로 가셔서 하느님을 믿기만 하면 하느님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신적 권능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의 신적 권능은 땅 속에 묻혀 사흘이나 지난 라자로의 육체를 소생시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입니다.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에 대한 촉구와 참된 생명의 약속을 하십니다. 즉 믿음 안에서 육체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고, 우리가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 믿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그러므로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믿는 이들의 궁극 목표는 하느님을 뵙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가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직접 만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단지 보고 들을 수 있는 표징을 통해서 체험할 뿐입니다. 바로 유대인들은 라자로의 소생을 통해서 죽음을 이겨내는 참된 생명을 줄 수 있는 표징을 보고 체험합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죽음은 이제 하느님의 현존과 그분의 섭리를 명료하게 만나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믿는 이들에게 죽음 이후는 하느님의 섭리에 맡겨져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깨닫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죽음보다 더 강한 희망, 부활한 삶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고통, 부조리, 모순과 절망을 넘어 하느님께 가는 강한 믿음이야말로 죽음을 넘어 우리를 살게 한다는 점입니다. “

 

예수님께서 믿기만 하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셨듯이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누리는 영광을 이 세상에서 미리 맛보지 못한다면 결코 죽음 이후에도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혹시나 이 따뜻한 봄날에 죽었던 사람을 무덤에서 다시 깨워서 살게 한다면, 좋을텐데. 그러면 다시 살아난 사람이 허락받은 세월을 낭비하며 살지는 않을거란 희망을 기대하기보다는, “주님은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고 고백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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