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2주일

(마태 17,1-9)

산을 오름과 내려옴, 떠남과 향함

오늘 독서와 복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산’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산은 그 높이와, 산을 둘러싸고 있는 신비로운 공기 때문에 대부분의 종교에서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성경에서도 산은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러 간 모리야 땅에 있는 산에서 주님의 천사를 만납니다(창세 22,2.11-12). 모세와 엘리야는 타볼산에서 거룩하게 변모하신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모세는 호렙 산에서 불붙은 떨기 가운데 나타난 해방의 하느님을 만나고(탈출 3,1.10), 시나이 산에서 계약의 하느님을 만나 십계명을 새긴 판을 받고 빛나는 얼굴로 산에서 내려옵니다(탈출 34,10.29).

엘리야는 가르멜 산에서 바알 우상을 섬기는 예언자들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살아계신 참된 하느님께로 돌아오게 합니다(1열왕 18,20-40). 그리고 호렙 산에서 만군의 주 하느님을 만나 자기에게 직면한 일의 분명한 결말에 대한 말씀을 듣습니다(1열왕 19,12.15-16).

산을 올라야 하는 까닭은 단지 육체 건강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엘리야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기존의 자신의 장소와 상황을 떠나 산에 오름으로써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합니다.

성체 앞에 앉아 있는 시간, 가족과 함께 기도하기 위해 십자가 아래에서 무릎 꿇는 시간은 아브라함이나 모세, 엘리야처럼 하느님을 만나러 산에 오르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특히 지금 이 미사 시간은 높은 산에서 하느님을 만나 사랑을 주고받는 가장 거룩한 만남의 시간입니다.

하느님을 만나러 산에 오르면 ‘모세의 하느님’을 만나 삶의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변화됩니다. 또한 ‘엘리야의 하느님’도 만나 우상을 버리고 생명의 참된 하느님을 따르도록 변화됩니다. 하느님을 만나러 산에 오르는 사람만이 하느님을 만나 거룩하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산에 오르지 않습니다. 산 아래에 자리를 펴고 앉아 먹고 마시며 현실에 안주하거나 욕망의 화신으로 살아갑니다. 산에서 하늘을 보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키지 않아 삶의 깊이와 초월을 잊고 상처와 다툼, 귀차니즘과 쾌락에 젖어 살아갑니다.

기존의 삶에서 하느님을 만나러 산으로 향하는 일은 하느님과의 친교와 그리스도 추종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성체 앞, 십자가 아래에서만이 아니라,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는 순간 지금 여기에 내 존재의 중심에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산에 있게 됩니다.

거룩한 변모를 본 베드로는 산에 초막을 지어 그곳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산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높은 산 정상에서 영광으로 충만한 당신만을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수난당하고 죽으신 당신도 보아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산에서 공경받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당신 뜻대로 살아가길 바라십니다.

미움과 배신감이 깊을수록, 절망과 고통 속에 있을수록 오히려 산에 올라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도록 합시다. 하느님을 만나면 하느님에 의해 변화되어 하느님의 빛으로 나의 삶과 세상을 꿰뚫어 보게 됩니다. 그러면 수난과 죽음을 통한 영광과 승리의 부활이 분리시킬 수 없는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절망을 이기는 희망, 무의미를 이기는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2티모 1,8)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주셨습니다.”(2티모 1,10) 우리의 존재와 삶이 자비하신 하느님 안에 있으니, 우리의 가난과 무력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시다. 삶의 양지뿐만 아니라 음지도 하나로 껴안고 “일어나 두려움 없이”(마태 17,7)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갑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살고 죽고 부활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십자가의 죽음도 마다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보여주는 산이 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