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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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주님봉헌 축일(가해, 2014. 2. 2) - 장 아론 신부 14-02-03 09:31:2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188   

연중 제4주일(주님봉헌 축일) 강론

(루카 2,22-40)

 

익숙했던 것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가족들이, 친구들이, 그리고 나의 방이, 매일 쓰던 칫솔이, 항상 입던 옷이. 매일 만나는 사람, 항상 쓰는 물건 그대로이지만 기존에 내가 알고 쓰던 것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낯섦은 외부에서만이 아니라 자신과 내부에서 느끼기도 합니다. 자신의 모습, 행동과 말에서 말입니다. 내가 이렇게 생겼었나!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나에게 이런 면이 있다니! 하며 자신이 채 알지 못했던 모습들을 발견하고는 얼굴을 쓸어내리기도 하고 볼과 코를 잡아당겨보기도 합니다.

 

저는 가끔 수도생활에서도 낯설음을 느낍니다. 기도를 하다가 문득 수도복을 입고 있는 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 내가 수도자였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형제들 한바탕 부딪치고 무엇이 잘못 되었나를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그때야 내가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구나!” 하는 실감이 납니다. 10여년 가까이 수도복을 입었고 공동체 생활을 해 왔지만 깨달음이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나에게 와서 진리가 되는 순간 닭살이 돋으면서 또 낯설음을 느낍니다.

 

이 낯섦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한 시점에만 영원히 머물 수 없고 또 철저히 자신만을 위한 삶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끊임없는 변화속에서 자신을 위해서, 또 동시에 타인을 위해 살아갑니다. 스스로에게서 느끼는 낯섦도 바로 타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봉헌이라는 개념도 낯섦을 필연적으로 동반합니다.

봉헌의 본질은 내어주는 것, 자기증여(自己贈與)” 입니다. 봉헌은 상대에게 내어주는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수도자의 봉헌은 하느님과 형제들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족, 친지, 친구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이들이 관계를 맺고 타인에게 공헌하며 살아가기에 세상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봉헌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봉헌은 언제나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본받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 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봉헌되셨습니다. 율법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모태를 열고 나온 맏아들은 하느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온전히 봉헌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마리아와 세상에 예수님을 봉헌하셨고 오늘 마리아는 그런 예수님을 다시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이렇게 하느님께 봉헌된 예수님은 다시 세상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를 봉헌하시고 하느님께서는 다시 성령을 세상에 봉헌합니다.

 

이처럼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리스도의 봉헌이 우리가 본받아야할 봉헌생활의 모습입니다. 단 한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어디서든 자신을 봉헌할 준비를 하고 하느님의 필요에 따라 투신하는 것, 이것이 수도자들의 봉헌생활이 아닌가 합니다. “나는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이라는 수동적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나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사람이라는 능동의 표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봉헌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순간순간 내어드리는 봉헌을 갱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속성 때문에 수도생활을 일컬어 봉헌생활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투신 속에는 낯선 환경, 낯선 사람, 낯선 일들 투성이겠지만 그 낯섦을 그리스도의 분위기로 승화시켜 나가는 것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수도자들의 봉헌생활이 아닌가 합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봉헌 생활을 하는 것도 결국은 투신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부인에게, 남편에게, 자녀에게, 부모에게, 나아가 이웃에게 투신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의 두 골자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봉헌생활과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봉헌생활을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헌생활을 가시적으로 명확히 드러내는 수도생활에 많은 형제·자매들을 초대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7년에 주님 봉헌 축일인 오늘을 봉헌생활의 날로 정하셨습니다. 수도생활을 정적인 것이라고 많이들 생각하지만 저는 수도생활이 그 어떤 생활보다도 역동적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리에 띠를 두르고 언제든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수도자들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낯섦과 그 낯섦에서 오는 다이나믹한 긴장, 그리고 그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기쁨을 함께 누려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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