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HOME > 자료실 > 오늘의 강론  

  오늘의 강론  
제 목 :  대림 제1주일(가해, 2013.12.1.)-고 이사악 신부 13-12-03 15:43:5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539   

대림 제1주일(마태 24,37-44)

 

삼년 전에 서울에서 G20이라는 회의가 열렸습니다. G20이라고 해서 쥐 스무 마리가 모여서 하는 회의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고 세계에서 잘 사는 스무 나라의 대표들이 모여서 국제 경제에 대한 논의를 하는 회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전세계 200개가 넘는 나라들 중에 대한민국이 상위 10퍼센트에 속할 정도로 잘 산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알려 주는 실질적인 표지는 각종 복잡한 통계자료보다 달라진 우리의 밥상이 아닐까 합니다. 아무튼 저는 밥상을 받을 때마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잘 살게 되었는지 실감합니다. 어릴 적 제사 때나 맛볼까 말까했던 음식들이 이제는 예사로 상에 오릅니다. 이밥에 고깃국을 예사로 먹고 있으니 그야말로 지상낙원이 따로 없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88올림픽을 치루고 나서 밥상이 바뀌었습니다. 보리밥이 자취를 감추면서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나고 자랐던 섬에서는 논이 드물어서 쌀을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할머니들이 말하기를 시집갈 때까지 쌀 한 말을 못먹었다고 하니 그 궁상을 짐작할만 합니다. 그래도 제가 초등학교 다닐 적에는 형편이 나아져 웬만한 집들은 쌀과 보리가 반씩 섞인 반지기 밥을 먹고 살았습니다.

 

잡곡밥이 건강에 좋다고들 하지만 입맛에는 하얀 쌀밥이 낫습니다. 맨날 거무튀튀한 보리밥을 보다가 백옥같이 빛나는 쌀밥을 보면 입맛보다는 눈요기가 우선입니다. 음식에 곱다는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우리 고향 사람들은 쌀밥이 곱다며, 고운 밥, 곤밥이라고 했습니다. 곤밥은 제사 때나 얻어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손꼽아 제삿날을 기다렸습니다. 제삿날에는 곤밥에다가 제사상에만 올라가는 옥돔미역국과 옥돔구이 그밖에 각종 산적과 부침개 그리고 과일까지 어우러진 맛난 밥상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한 밤, 두 밤 날을 헤아리며 제삿날을 기다렸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행복해집니다. 제사는 먼저 가신 조상을 추모하는 자리이지만 살아있는 후손들을 위한 축제이기도 했습니다. 제사를 준비하면서 일어났던 웅성거림과 소란스러움, 그리고 피를 나눈 겨레붙이들이 한데 모여 웃고 떠들며 자아냈던 화목한 분위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모든 기다림이 그렇듯이 제삿날에도 일종의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자정이 가까울수록 눈이 스스로 감깁니다. 천근만근 무거워진 눈꺼풀을 감당해낼 장사는 세상에 없습니다. 제사를 지내고 제사상을 물리기도 전에 잠이 들면 그 맛난 것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참아내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야속하게도 어른들은 제사에 오지 못한 사람들 몫은 따로 챙겨주면서, 제사에 와서 자는 놈들 몫은 절대 챙겨주지 않습니다. 결국 다음날 아침 눈을 뜨면 어제밤 끝까지 깨어 있다가 음복을 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몰려옵니다. 친척들이 먹다 남긴 옥돔 대가리에 붙은 살점을 발라, 다 식어빠진 곤밥을 먹으며 다음 제삿날에는 기필코 깨어있으리라는 다짐에 다짐을 합니다.

 

대림절을 시작하면서 어린 시절 손꼽아 제사를 기다리던 마음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올해는 과연 대림시기를 충실히 보내고 뿌듯한 마음으로 주님을 맞아들일 수 있을까? 주님이 성탄절에만 오시는 것은 아니건만, 매순간 오시는 주님을 맞아들이지 못하고, 우리는 또 다음 기회만을 기약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언제 내 안에 주님을 모시고 살런지 걱정입니다. 이러다가 인생이 후회로 점철되는 것은 아닌지.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절실해집니다.

 

대림시기를 한마디로 요약해 주는 단어는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의 과정은 사실 지루하고 힘겹습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때때로 아무런 결실 없이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꿈꾸고 기다리면서 느끼는 묘한 행복은 우리의 생활을 싱그럽게 해줍니다. 더 나빠질 것도 없어 보이고, 그날이 그날 같은 지루한 일상이건만 그 안에서 작은 기쁨이나마 찾을 수 있는 것도 우리가 언젠가 완성될 구원의 그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그날은 생각치도 못한 때에 올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일하는 평범한 일상 중에 드러나지 않게 오시는 주님을 깨어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그날은 기쁨의 날이 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가혹한 심판의 날이 되어 파멸을 당하고 맙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구원이지 결코 파멸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맞이할 종말이 기쁨이 되도록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희망찬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한 달 동안 기다림의 시기를 보내면서 자신을 낮추시고 비천한 인간의 처지로 내려오신 하느님의 사랑을 묵상하고 마지막 날 완성될 구원을 그려봅니다. 모쪼록 구원을 향한 우리의 기다림이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근거 없는 희망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맹세하신 굳은 약속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대림 시기를 시작했으면 합니다.

추천하신 회원님 : 0 명

♡한마디의 아름다운 댓글이  관리자님과 우리 모두의 마음을 풍요롭게 합니다♡ 조회 : 2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