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HOME > 자료실 > 오늘의 강론  

  오늘의 강론  
제 목 :  그리스도왕 대축일(다해, 2013.11.24.)-오 아브라함 신부 13-11-25 13:34:5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748   

그리스도 왕 대축일(루카 23, 35-43)

 

 

오늘은 전례력으로 다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주일로서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왕이심을 고백하는 축일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써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왕으로서 영광을 받으시고 세말에 심판하러 재림하시리라는 것을 신앙으로 믿고, 또한 그분의 왕국은 끝이 없으리라고 고백합니다(사목 45).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경축하는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생애 중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가장 무력한 순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두 죄수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계십니다. 로마 군사들은 가시관을 그분의 머리에 씌우고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37) 조롱합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의 임금”(38)이라는 증거는 그분의 머리 위 십자가에 붙어 있는 죄명 패입니다.

 

그리스도 왕은 이 세상의 왕처럼 권력을 휘두르는 왕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왕이십니다. 왕이신 그리스도는 화려한 금관을 쓰고 높은 어좌에 앉아 영광을 누리는 분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치욕적인 죽음을 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왕으로서의 영광보다는 이렇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신앙 고백하는 날입니다.

 

이란 한자에서 맨 위의 획은 하늘을 나타내고, 중간 획은 사람을 나타내며, 맨 아래 획은 땅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이란 하늘과 사람과 땅을 이어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란 글자를 잘 살펴보면,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십니다. 참다운 왕은 십자가의 왕입니다. 예수님의 왕관은 가시관이고, 그분의 왕좌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제사로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키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왕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우리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처럼 그분께서 걸어가신 십자가 길을 따라 간다는 뜻입니다.

 

십자가는 고통을 치워주거나 병을 낫게 해주는 부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십자가를 방에 걸어 놓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제 십자가를 몸소 지고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느님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그분처럼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짊어지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는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피하지 말고 걸어갑시다. 예수님께서 수난의 잔을 받아들이셨듯이 우리도 아버지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받아들입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듯이 우리도 이웃을 섬깁시다.

 

그리스도 왕 대축일인 오늘, 우리는 신앙의 해를 폐막합니다. 신앙의 해를 맞아 한 해 동안 우리는 얼마나 예수님을 살아계신 우리의 구세주로 만나셨습니까? 하느님 없이도 잘 살아가는 세상, 황금만능주의 세상에서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섬기셨습니까? 돈과 쾌락과 명예에 대한 욕망의 노예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자유로운 자녀로 서로 형제자매로 섬기고 사귀며 나누셨습니까?

 

신앙은 예수님을 머리로 이해하고 말로 고백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해 예수님을 온 삶으로 드러내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섬김과 나눔과 사귐의 나라요,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왕국을 우리를 통해서 확장시키고자 하십니다.

 

예수님께 하느님은 위대한 황제나 백성 위에 군림하는 통치자가 아니라 아빠(abba), 연민의 아버지였듯, 서로를 형제자매로 받아들이며 특히 고통에 함께 하고 사람들을 통해 아버지의 나라가 오고 있습니다.

 

동방박사가 찾은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은 예루살렘 왕궁의 강보가 아니라 베들레헴 마굿간 구유에 누우신 아기였듯, 예수님처럼 오늘도 자기를 온전히 비워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려는 사람을 통해 주님의 왕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에 나도 매달립시다. 예수님이 쓰신 가시관을 나도 쓰고 삽시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도 나에게 나를 닮았다고 하실 것입니다.

추천하신 회원님 : 0 명

♡한마디의 아름다운 댓글이  관리자님과 우리 모두의 마음을 풍요롭게 합니다♡ 조회 : 2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