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HOME > 자료실 > 오늘의 강론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 제31주일(다해, 2013.11.3.)-서 알베르토 신부 13-11-04 12:55:2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431   

다해 연중 제31주일

루가 19, 1-10

 

예리고는 세관 도시였고 향()수출 도시였다. 자캐오는 세관장으로서 그 일대의 여러 가지 상업적 통관세를 관장했다.

아마도 그는 어릴 때부터 키가 작다는 이유로 주위 사람들 특히 친구들로부터도 무시나 멸시를 받아 한을 품고 산 것 같다. 그 한을 풀기 위해서 열심히 돈을 벌며 살아왔고 또 돈이 되는 일이라면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충성도 배반하고 하느님 백성이 누리는 명예도 포기하고 세관원이 되었으며 나중에 승진하여 세관장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이미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고 그래서 한 번 만나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든 차에 예수님이 예리고 거리를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꼭 그를 만나보고 가능하면 얘기도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군중은 많고 자기는 키가 작아 앞으로 나갈 수도 직접 볼 수도 없어서, 체면 불구하고 돌무화과 나무위로 올라갔다. 이미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경멸 따위는 무시하는데 익숙해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예수를 만나는 것이며 하다못해 제대로 보기라도 해야 했다.

 

마침 예수님은 나무 위에 그를 발견했고 뜻하지 않게 예수님이 자캐오의 집에 머물겠다고 하신다. 자캐오는 얼른 나무에서 내려와 기뻐하며 자기 집에 모셨다. 이를 본 유대인들은 죄인 세리의 집에 묵는 것을 못 마땅해 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결코 공적인 죄인 세리의 집에 묵는 것 뿐 아니라 함께 식탁에 앉는 일도 없었다.

자캐오는 자기 회개의 표시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속인 것에 대해서는 네 갑절로 갚겠다고 선언한다. 이런 방식은 율법학자들이 요구하는 것으로 이렇게 자기의 회개가 참되다는 것을 보여 주라고 한다. 자캐오는 분에 넘치게도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게 되어 감격하고 감동이 되어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사할 마음이 생겼을 것이다. 예수님은 비로소 오늘 이집에 구원이 내렸습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집, 이 가정의 구원을 선포하신다.

 

먼저 자캐오는 예수님 만나기를 열열이 원했다. 그리고 그 염원이 이루어졌다. ‘자캐오란 이름의 뜻은 하느님이 기억하셨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 이름대로 하느님은 그를 기억하셨고, 예수님이 그의 집에 머무르셨다.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뒤 돌아보게 된다. 과연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려 얼마나 애쓰고 노력하는가? 어떤 이유라도 생기기만 하면 주일 미사도 포기할 수 있고, 바쁘거나 피곤하다는 핑계로 쉽게 이미 결심한 아침저녁 기도도 생략하며 며칠이고 몇 달이고 신경 안 쓰고 살지는 않는지? 그러다가 주일이 되면 웬 주일은 이렇게 자주 닥치는가! 하면서 푸념하지는 않는가? 그러면서 오늘도 주일미사나 아침저녁 기도를 빼먹을 핑계꺼리를 찾지는 않은가? 우리는 얼마나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예수님 만나기 위하여 노력하는가? 오히려 내가 신자라는 것을 들어내거나 내가 기도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을 계면쩍어 하지는 않은가? 그렇게 신자로서 살아가는데 자신감이 없지는 않은가? 오늘 복음의 자캐오는 세관장이라는 높은 자리에 있었고 따라서 상당한 권력을 누렸으며 그의 재산도 상당히 많은 부자였지만 체면 불구하고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돌무화과 위에 올라갔다. 과연 나라면 그렇게까지 할 용기가 있었겠는가?

 

주님은 만나고자 열망하는 사람에게 머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주님을 기쁘게 맞아들이고 정성을 다해 모신다면 주님은 나에게 구원을 이루어주실 것이다. 사실 오늘날 현재 안정된 생활을 하고 왕성하게 사회 활동을 하는 많은 자캐오들이 회개는 염두에 두지도 않고 살아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죄지은 일도 없고 세상 사람들이 나만큼만 하면 세상은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러나 매일이라도 그 많은 사랑을 실천할 기회들을 게을리 하고 현재에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으로는 결코 회개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이 감동과 회개로 귀결되어 간다. 나도 감동되어 그 회개의 표시로 나에게 돌아올 상당한 희생이라도 기뻐하며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더욱 주님을 가까이 모시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성체를 영할 때에 얼마나 기쁘게 예수님을 맞아들여 내 안에 모시는가? 우리는 매일 혹은 매주일 성체를 모시면서 내가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해가고 있는가? 오래도록 전연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내가 하느님 앞에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반성해볼 일이다. 또 나는 성체성사로써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게 된 것에 대하여 얼마나 감동하는가?

오늘 너에게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예수님이 선포하신다면, 내가 모신 주님께서 내게 이루어주실 구원에 대하여 어떤 느낌을 가지는가?

사실 구원자 예수님은 바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지금 여기에 오셨고 나에게 오신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오늘 나는 너의 구원을 위하여 너를 찾아 여기에 왔다. 너도 세례성사를 통하여 이미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추천하신 회원님 : 0 명

♡한마디의 아름다운 댓글이  관리자님과 우리 모두의 마음을 풍요롭게 합니다♡ 조회 : 2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