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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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 제 25주일(다해, 2013.9.22.)-오 아브라함 신부 13-09-23 08:18:0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075   

-연중 25주일(루카 16,1-13)

130922. 본원

 

자기 삶의 성찰자 약은 집사 되기

 

2013년 초에 발표된 청소년 청렴성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청소년 둘 중 하나는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이나 취업을 알선해올 경우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정직하게 사는 것보다는 거짓말을 하거나 불법을 통해서라도 부자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응답한 청소년이 열 명 중 네 명(40.1%)이었는데, 이것은 성인 열 명 중 세 명(31%)이 응답한 비율보다 거의 10%나 더 높은 비율이었습니다.

 

우리는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황금만능 시대’,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거래만능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어디에도 기댈 수 없으며, 돈이 없으면 죽는 세상에서 삶은 두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삶의 고통이 온 세계에 구조적으로 확산된 이 시대에 나 하나 지키는 것조차 힘든 싸움입니다. 그렇다고 돈이 사람과 삶을 잠식하는 이런 상황을 성찰하지 않고 살아도 되는 일일까요?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당시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을 잘 섬긴 대가로 받은 재물의 소유권은 인정했지만 재물을 하느님처럼 섬기지 않는다는 입장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의하면,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의 소유권은 하느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소유한 모든 재물은 하느님께서 맡기신 것으로서 관리권만 위임받은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재화를 창출하는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발전했지만, 우리는 그 재화를 하느님의 뜻에 맞게 쓸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교회까지도 역사 안에서 때로는 하느님이 아니라 재물의 위력에 굴복하는 과오를 범해왔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하느님이나 복음, 교회를 내세우면서 안으로는 재물욕이 동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내 삶의 주인이 자본이 아니라 하느님이라는 고백은 신앙의 문제요 영성의 문제입니다. 자본이 인간 위에 폭군으로 군림하는 상황에서 우리 자신의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합니다. 자신을 성찰하지 않으면 시장 전문가들이 나를 소비자로 만들어 내 꿈과 희망까지 팔아먹게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앞에 놓인 가장 큰 낭비는 돈의 탕진이 아니라 인간적 가능성의 탕진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집사는 집사 일을 청산하라는 생계의 막다른 길목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찾았습니다. ‘이왕 버린 몸이라고 체념하거나 막장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희망은 정직한 절망에서 시작됩니다. 집사는 현실의 진실을 직시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만듭니다. 끝을 선택의 기회로 받아들여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영리하게 대처함으로써 참된 시작을 가져옵니다. 바로 이것이 집사가 주인으로부터 칭찬 받은 이유일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자면 누구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손을 깨끗하게 간직하려고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살 수도 없습니다. 최고의 삶의 기술은 언제나 나쁜 것에서도 좋은 것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재물로 호화로운 안락의자는 살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 단 잠까지는 살 수 없었던 집사. 재물과 함께 했지만 소외되고 불행했던 집사는 이제 재물보다 사람을 선택합니다. 그는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약은사람입니다. 욕먹고 오래 살기보다 칭찬 받고 영원히 살기를 택한 약은사람입니다.

 

약은 집사처럼 우리도 변화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고 기꺼이 변화되도록 합시다. ‘산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이고, 완전해진다는 것은 자주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변화한다는 것은 뉘우치고 성찰한다는 것이며, 이 과정은 일생에 걸쳐 매일 계속되어야 합니다.

 

미국 달러화의 뒷면에는 ‘In God we trust’(우리는 하느님을 믿는다)란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재물보다 하느님을 우선해야 한다는 의식을 화폐에까지 새긴 것입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재물이 주인 노릇하지 못하게 합시다. 자본 위주로 돈에 돌지 말고, 인간 위주로 돈을 돌리며, 하느님 위주로 돈을 나누도록 합시다. 자본이 던지는 도전에 신앙과 영성으로 응전하며 삽시다.

 

가난을 부인으로 선택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처럼 하느님만을 주님으로 섬기는 가난한 사람이 됩시다.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는 참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루카 6,2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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