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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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 제24주일(다해, 2013.9.15) - 인 끌레멘스 신부 13-09-16 08:15:1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189   

연중 제24주일

(2013.09.15 수도원 첫강론)


“세리와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왔다. 그러자 바리사이와 율사들이 투덜거리며 ‘저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함께 먹는구나’ 하였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들을 찾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옆에는 늘 잃어버린 양들인 죄인들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은 자신들이 보기에 의로운 사람들만 찾아다녔습니다. 자신들의 잣대에 못미치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죄인으로 내려봤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단죄의 달인들, 편가르기의 달인들이었습니다. 회개의 필요성을 못느끼는 의인들이며 완고하고 스스로를 의인들로 여겼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하느님과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투덜거리는 자칭 의인들인 바리사이와 율사들에게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작은 아들은 가산을 다 탕진한 후 후회와 고통 속에서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어떠한 조건도 없이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작은 아들이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들을 보고 ‘측은히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측은한 마음이 들다”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단어의 그리스어는 동사 “스플란크니조마이”(splanchnizomai)입니다. 이 동사를 직역하면 “창자가 움직이다” “내장이 찢어지도록 아프다”는 뜻입니다. 마음만 아픈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통증도 느꼈다는 것입니다. 이 동사를 사용함으로써, 아버지의 아픔, 아버지의 고통은 작은 아들의 고통과 같은 것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통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수도원에서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도 “저 사람은 왜 저래? 정말 꼴불견이군”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끊임없이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나는 저 사람과 다른 사람이야 하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심지어 단죄하기까지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저 형제가 저러는 것은 저 형제 탓이 아니라 바로 내 탓이다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나와 상관없는, 나와는 무관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책임이라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저 사람은 왜 저래...” 하고 속으로 손가락질 하고 지적하는 바로 그것이 내 안에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내가 멀리하고자 하는, 쳐다보기도 싫은 바로 그것들이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참된 겸손이 필요합니다. 겸손이라는 것이 머리를 푹 숙이고 땅만 쳐다보고 다닌다고 해서 겸손이 아닙니다. 참된 겸손은 다른 사람에게서, 그리고 세상에서 발견하는 모든  어두운 면들이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깨달음이며 자각입니다. 이렇게 자각한 사람은 “아, 하느님은 저런 사람을 통해서도 당신의 일을 하시는구나!”는 놀라운 사실을 보게 되고 인정하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본당에 있을 때나 수도원에 들어와서도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예전에는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아주 아주 조금(손톱만큼) 마음이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그 형제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축복의 기도를 봉헌합니다. “주님, 저 형제를 축복하여주소서.” 참 신기합니다. 상대방이 아니라 제 자신이 해방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축복기도가 함께 할 때, 그 형제나 나 자신이 모두 자유로워집니다. 기도는 내 자신을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봉헌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은총은 그 형제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거쳐 끝내는 우리 자신에게 몇 배의 선물이 되어 기쁨으로 되돌아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오묘한 힘이며 신비입니다. 사실 기도 안에서 변화되는 것은 그 대상이 아니라 바로 기도하는 내 영혼입니다. 두 손이 하나가 되면 아름답다고 합니다. 두 손을 따로 꽉 쥐면 주먹이 되지만, 두 손을 펴서 가지런히 합치면 기도하는 손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은 기도하는 손입니다. 십자가에서조차 기도하신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무엇보다도, 함께 사는 형제들과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영혼이 되어야 합니다.


독일 베를린에서 북쪽으로 9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세계 2차 대전 중 나치 정권이 세운 라벤스부뤼크 강제노동수용소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했습니다. 1945년에 그곳에서 종이 한 장이 발견되었는데, 기도문이 적혀 있었습니다.


“오, 주님,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만을 기억하지 마시고

악한 의지를 지닌 사람들도 기억하소서.

그리고 그들이 우리에게 가했던 그 모든 고통은 기억하지 마옵소서.

대신 이러한 고통 때문에 우리가 맺은 열매들,

우리의 우애, 충성, 겸손, 용기, 관대함,

이 모든 것에서 싹튼 마음의 위대함을 기억하소서.

핍박한 자들이 심판받게 될 때

우리가 맺은 이 모든 열매로 그들을 용서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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