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만찬성목요일(요한 13,1-15)

130328. 성목요일. 본원

지금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당신이 사랑하시던 제자들과 함께 하신 마지막 만찬을 기념하는 미사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제자들과 이별하는 이 마지막 식사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를 제정하십니다. 이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의 죽음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피와 물까지 남김없이 쏟으신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기념합니다.

그런데 요한 복음서를 제외한 다른 세 복음서들이 전하고 있는 성찬례 제정 이야기가 오늘의 복음인 요한복음서에는 없습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최후의 만찬 이야기 대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서의 세족례 이야기는 최후 만찬으로 시작된 성찬이 지닌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랍비들은 하인이 상전을 섬기듯 제자들이 스승을 섬기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승이신 당신이 직접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써 이런 사회적 관습을 전복하십니다. 최후만찬 자리에서도 사도들은 “누구를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로 말다툼”(루카 22,24)을 벌였습니다. 그 누구도 다른 이의 발을 씻기고 섬기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마치 부모가 자녀들에게 유언을 남기듯, 돌아가시기 전날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써 당신의 극진한 사랑을 보여주시고, 서로 봉사하고 사랑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 주기 위해서는 먼저 그 사람의 발아래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섬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낮춰야 합니다. 마치 바다가 모든 물을 다 받아들이듯, 정상에 오르려는 욕심을 버리고 가장 낮은 바닥에 자신을 놓을 수 있어야 섬길 수 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발이 아니라 형제자매들의 발을 서로 씻어주라고 명하셨다는 점입니다. 나아가 향기 나고 깨끗한 발이 아니라 냄새 나고 더러운 발을 씻어주라고 하셨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처럼 상대방의 죄와 부족함, 상처까지도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그것이 진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발을 씻어주지 않으면 예수님과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 됩니다(요한 13,8 참조). 예수님과 우리 그리고 우리 사이의 친교는 먼저 섬김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섬김 없는 친교, 즉 디아코니아 없는 코이노니아는 허상에 불과합니다.

성 목요일 주님의 만찬일은 특별히 우리 베네딕도회에 가장 의미 있는 날입니다. 그것은 베네딕도회의 삶에서 전례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성 베네딕도께서 수도원을 ‘주님을 섬기는 학원’으로,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죽을 때까지 수도원에서 ‘주님을 섬기는 것을 배우는 학생’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섬기는 사람입니다. 섬김은 신자의 본질적 특성인 동시에 베네딕도회원들의 삶의 핵심입니다.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섬길 때(마르 10,45 참조), 바로 그 섬김을 받는 이웃 안에서 예수님이 섬김을 받으십니다.

주님 만찬 성 목요일은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이 보여주신 겸손한 섬김으로, 십자가로 드러나는 사랑의 극치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며 스승인 예수님께서 우리의 발을 씻어주었다”(13,14)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예수님께 사랑의 큰 빚을 지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살아야 잘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끝까지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도록 합시다(요한 13,1). 남을 희생해서라도 나만 높아지면 그만이라는 이 세상에서 섬김의 모범이 되도록 합시다.

예수님처럼 ‘끝까지’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 상의 제사에 바쳐지는 빵과 포도주가 되게 합시다. 삶의 마지막에 우리를 후회 없게 하는 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사랑하고 섬긴 삶일 것입니다. 우리가 맺을 열매는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요한 15,12 참조). 그런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나의 친구라고 말씀하시며 환영하실 것입니다(요한 15,15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