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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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사순 제4주일 (다해, 2013.3.10) - 김 폴리카르포 원장신부 13-03-11 07:16:3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265   

2013년 4월 10일/ 사순 제4주일/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金鐘弼 폴리카르포 修士神父

 

<시작하면서>

오늘은 사순 제4주일입니다. 오늘 미사전례의 입당송은 ‘LAETARE(즐거워하여라)’로 시작합니다.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아(Laetare Jerusalem). 그를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모여라. 슬퍼하던 이들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cum laetitia 기쁨으로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위로의 젖을 먹고 기뻐 뛰리라.”

 

 제1독서인 여호수아기(5,9ㄱㄴ.10-12)의 말씀은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로 생존했던 광야의 40년을 마무리하고 약속의 땅에 이르러 파스카 축제를 지냈다는 보도와 그 땅의 소출을 먹은 다음 날 만나가 멎었다는 보도입니다.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한 진정한 인도자요 주인공은 계약을 준수하시는 신실하신 하느님이십니다.

 

 제2독서인 코린토 2서(5,17-21)의 말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2코린4,5)한 바오로 사도의 사도직에 대한 소신으로 ‘바오로 사도의 그리스도론’이 드러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과 부활로 하느님과 인류의 화해를 이룩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룩된 인류 구원을 일컬어 ‘새로운 피조물’(17절), ‘화해’(18-19절), ‘하느님의 의로움’(21절)이라고 언급합니다. 대속죄적인 죽음으로 가없는 사랑을 보여주신 그리스도, 부활하시어 그 사랑을 이제와 영원히 늘 베푸시는 그리스도의 품안에서 살면 ‘새로운 피조물’(17절)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극진한 사랑을 체득하고 그 사랑에 화답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15절) 살려고 작심하는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은 태초의 천지창조와 맞먹는 창조사건입니다. 종말론적 미래의 현재화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진술하는 사도직은 바로 이 화해의 사건인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직은 ‘화해의 봉사직’입니다.

 

 오늘 복음은 루카복음(15,1-3.11ㄴ-32)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는 자비로운 아버지를 중심으로 대조적인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작은아들(12-24절)과 큰아들(25-32절)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되돌아온 작은아들을 반기는 아버지의 모습(24절)과 이를 못마땅해 하는 큰아들을 설득하는 아버지의 모습(32절)이 두드러집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계기와 이 비유의 뜻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주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러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은 심히 못마땅히 여겨 투덜거렸습니다(1-2절 참조). 이에 대한 답변으로 예수님께서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11-23절)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뜻인즉, 하느님은 회개하는 죄인을 기꺼이 반기시니(24절),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하느님의 이 기쁨에 마땅히 동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32절).

 

본시 루카복음 15장에는 도입부(1-2절) 다음에 ‘되찾은 양의 비유’(3-7절)와 ‘되찾은 은전의 비유’(8-10절)가 있고 이어서 비유의 절정인 ‘되찾은 아들의 비유’(11-32절)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비유는 다 하느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줍니다. 하느님이 참으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예수님은 이 비유들을 통해서 깨우쳐주십니다.

‘잃었다가 되찾았다’는 표현과 함께 ‘기뻐하다’는 동사가 여러 번 반복되면서 되찾은 양, 되찾은 은전, 되찾은 아들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하느님 아버지를 묘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한 사람이라도 잃어버리는 것을 진정 마음 아파하시고 되돌아오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하시다가 되찾게 되면 기뻐 어쩔 줄 모르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기쁨에 동참하도록 주위 사람들을 초대하여 기쁨의 찬치를 여는 기쁨의 비유입니다.

 

 작은아들(12-24절):

작은아들은 자기의 몫을 챙겨서 아버지를 떠나갔습니다. 작은아들은 모든 것을 탕진하는 긴 방황 끝에 다시 아버지와 아버지의 집을 생각했습니다. ‘일어나 아버지께 가야지’라고 하는 순간은 바로 새로운 삶을 위한 회심(回心)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21절). 작은아들은 죄를 지었음에도 여전히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를 믿고 구했습니다(18-19절 참조). 그리하여 아버지의 ‘기다림’이 ‘되찾음’으로 결실할 때가 무르익습니다.

 

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330년경-397년)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대하여 이런 해설을 남겼습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18절) 이는 자연의 창조주, 자비로운 후견인, 죄과를 판결하시는 재판관 앞에 내어 놓는 첫 번째 고백입니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아시지만 그대의 고백을 기다리십니다. ・・・ 고백하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위해 중재하게 하십시오. 고백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변호자께서 용서를 약속하십니다. 후견인께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옹호자께서 아버지의 호의를 약속하십니다. 이는 진리이니 믿으십시오. 이는 덕이니 따르십시오. 그분께는 그대를 위해 중재하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은 “헛되이 돌아가신 것입니다”(갈라2,21). 아버지께서 그대를 용서하시는 데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들이 바라는 것을 아버지께서도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7,224-25)

 

아버지를 떠난 아들이 아버지에게 되돌아가는 것은 회개를 의미합니다. 유다인들은 회개를 일컬어 ‘되돌아가다’(히브리어 동사 슈트)라 합니다. 사실 회개란 하느님을 등진 인간이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방향전환입니다. 하느님을 등진 인간은 죽은 몸이요 하느님께 되돌아간 몸은 다시 사는 몸입니다. 죄는 죽음을 초래하는 중병이요 회개는 새 삶을 잉태하는 선약입니다.

 

 라벤나의 페트루스 크리솔로구스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 중에 아버지와의 상봉에 대하여 이런 설교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20절) 이것이 아버지가 곁길로 간 아들을 심판하고 바로잡는 방식입니다. 아버지는 매를 때리는 대신 입을 맞추지요. 사랑의 힘이 허물을 보지 않게 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죄를 드러내거나 비참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입맞춤으로 아들의 죄를 용서하고 포옹으로 덮어 줍니다. 그렇게 상처의 흔적 하나 남지 않도록 말끔하게 고쳐 준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불법을 용서받고 죄가 덮어진 사람들!”(로마4,7). (페트루스 크리솔로구스 「설교집」3)

 

아버지는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라는 아버지의 태도에 대하여 교부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신성이 내려와 우리와 같은 인성으로 머무르실 때,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껴안으신 것으로 풀이하기도 했습니다.

 

 큰아들(25-32절):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29-30절)

아버지에게 불평하는 큰아들은 제 아우를 가리켜 “아버지의 ・・・ 저 아들”(30절)이라고 합니다. 이는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의 아들은 될지언정 결코 제 아우는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너의 저 아우”(32절)라고 수정하여 그 둘이 분명히 형제간임을 밝힙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31-32절)

 

<마무리하면서>

‘LAETARE(즐거워하여라)’ 축일이라고도 하는 사순 제4주일인 오늘 성큼 일어나는 봄기운을 기쁨으로 반깁니다. 새로운 약속의 땅인 부활대축일을 향하는 사순절이 정녕 ‘은혜로운 회개의 때’가 되도록 이끌어 주실 진정한 인도자는 신실하게 계약을 준수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화해의 봉사직’에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스스로와 서로를 위하여, 우리 사회와 지구촌을 위하여 용서와 화해의 삶에 동참했으면 합니다. 남은 사순절 동안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진정함과 정성스러움으로 고백할 수 있는 은혜를 덧입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사랑과 자비로 기다리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되돌아가는 회심으로 금년 부활대축일을 보다 더 큰 기쁨 중에 뜻 깊게 맞으시기를 기도하며 축원합니다.//癸巳年 春風에 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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