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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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 제4주일 (다해, 2013. 2.3) - 박 블라시오 신부 13-02-08 23:49:0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485   

연중 4주일(다해, 2013년 2월 3일) 본원 강론

(예레. 1,4-5.17-19; 1코린. 12,31-13,13; 루카 4,21-30 )

 
요즘 유기서원자들이 방학 특별 프로그램을 하고 있습니다. 1월 한 달 동안 수도생활의 여러 주제들 중에서 각자 한 가지 주제를 선택하여 공부하고, 2월 한 달 동안 토요일 아침마다 각자의 주제에 대해서 발표하고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어제 첫 시간을 하였는데, 마침 주제가 “수도생활이 지닌 예언적 의미”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미사의 독서와 복음에서 예언자와 관련된 많은 내용들이 나오는데, 여러분들과 함께 그 의미들을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예언자라고 하면, 미래의 일을 미리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서적 관점에서 보면, 예언자란, 하느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래서 대리인, 대변인, 전언자라는 뜻이 강합니다. 만일 예언자가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의 말을 전하거나,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지도 않았으면서 어떤 말을 한다면 그는 참된 예언자가 아니라, 거짓 예언자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1독서 예레미야서에 보면,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세웠다.” 이 말은 예레미아 예언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참된 예언자임을 하느님이 보증하는 것입니다. 
 
참된 예언자들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었지만, 많은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임금들이나 백성들의 반대에 부딪치고, 사람들의 비웃음을 견뎌야했고, 친척들이나 친구들로부터도 멀어지게 되고, 때로는 감옥에 갇히기나,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자신의 사명에 대한 회의에 빠지기도 하고, 자신을 파견한 하느님이 아무 말도 하시지 않아 그런 하느님의 침묵 때문에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 또한 너무나 큰 고통을 겪었기에, 긴 탄원의 고백을 우리에게 남겨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눈물의 예언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본인에게 너무 큰 고통을 가져왔기 때문에, 더 이상은 하느님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 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고 작정을 하지만,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고 있다고 고백합니다(예레 20, 9-10). 참된 예언자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고, 고향 사람들로부터 벼랑에 밀어 떨어뜨리려는 위협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온갖 것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하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 희년을 선포하고자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더 잘 알고 있는 고향사람들이 오히려 더 그를 배척하였습니다.
 
저는 고향에 휴가를 갈 때 마다 고향사람들이 너무나 환영을 해 주어서, 내가 참된 예언자가 아니라서 이런 좋은 대접을 받나하고,,, 그런 농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례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제직, 왕직, 예언직에 참여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고유한 조건에 따라 거룩한 삶을 살며, 하느님의 구원의 소식이 온 인류에게 전파되도록 노력해야 할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교회법 211조). 우리 수도공동체는 공동체 그 자체로 예언자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특별히 청빈, 정결, 순명의 서원을 통해서, 이 세상에 만연한, 복음과 배치되는 시류에 대항하여, 하느님의 가르침이 그릇되지 않았다는 것을 삶으로써 증거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현대의 복음선교> 21항에 보면, “복음은 모든 것에 앞서 증거로서 선포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창조 질서가 파괴된 곳에/ 노동자들이나 농민들의 권리가 짓밝히고 있는 곳에/ 무력으로 평화를 구축하겠다는 그릇된 시도 앞에/ 잘못된 사회적 구조가 인간에 대한 감시와 억압을 조장하는 곳에/ 예언자들의 증거와 연대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구약의 예언자들도 많은 고통을 겪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고통과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떨까...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오늘 제2독서에서 ‘사랑’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아름다운 말씀을 듣습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고린토 1서 13,4-7).
 
어떤 분이 좋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랑’ 대신 ‘예수님’을 넣어 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참고 기다립니다. 예수님은 친절합니다. 예수님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참고 기다립니까? 나는 친절합니까? 나는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까? 나는 무례하지 않고, 내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까? 나는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까? 나는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까?”
 
“내가 아이였을 때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다”고 바오로 사도는 이야기 합니다. 하느님을 완전하게 우리에게 전달해 주시는 참되고 유일한 예언자이신 예수님을 따르고자 결심을 하고 있는 우리들은, 하느님이 주시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늘 간직하며, 우리의 소명을 실천하고 증거할 수 있도록 매진해야겠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예언자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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