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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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대림 제3주일 (다해, 2012.12.16) - 장 아론 신부 12-12-17 13:14:5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159   

대림시기를 지내는 요즘 우리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독서와 복음말씀을 듣습니다.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루가 복음서는 다른 복음서들에 비해 비교적 세례자 요한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을 통해 구세주께서 오심을 점진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요한 외에도 군중, 세리, 군인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요한에게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실천하면 좋을지를 물어봅니다. 요한은 각자의 상황에 맞도록 그들이 행해야 할 바를 말해 줍니다. 하지만 요한이 지어준 의무는 힘겹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구체적이고 실생활과 관련된 것들 이었습니다. 군중에게 요구한 것은 “옷을 두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주고 먹을 것도 나누어주라”는 것이었고 세리에게는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군사에게 요구한 것은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봉급으로 만족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이 군중과 세리, 군사에게 요구한 것은 딱 그만큼 지키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전적으로 희생하라는 요구도 아니었고 가진 것을 탈탈 털어 하느님께 봉헌하거나 이웃을 위해 쓰라는 요구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주어진 상황에 열심히 살면서 편법을 저지르지 말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들이 듣기에 요한이 준 의무는 싱거운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고 메시아의 입에서 나오는 요구조건들은 분명 엄격하고 혹독한 것이리라 여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등장하는 사람들은 요한의 입에서 무슨 요구가 나오든 그것을 받아들일 의향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종말사상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의 요구는 정당히 얻은 것을 누리지만 지나친 욕심으로 그것 이상을 요구하지 말고, 넉넉하거든 이웃과 나누라는 말입니다. 크게 어렵지 않은 요구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요한의 요구는 바로 정의의 요구입니다. 정의의 뜻은 “각자에게 주어져야 할 바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정의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당한 몫을 받고 남에게도 정당한 몫을 돌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세상에 정의를 실현시킴으로써 메시아 오심을 준비했던 예언자였습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가르침과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뜻에서 멀어진 인간들을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는 목적을 두고 설교하는 사람들이 예언자입니다. 성경에서 예언자는 항상 정의의 사도로 등장을 합니다. 현실의 안락함에 만족하고 현실과 타협하고 있을 때 예언자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인간본래의 존재이유와 목적에 대해 일깨워 줍니다.

성경에서도 그렇듯이 정의를 실현하려는 예언자들은 언제나 박해를 받습니다.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이제는 너무나 정의로부터 무뎌져 이기주의와 편법이 당연시 되고 있습니다. 정의를 이야기하면 경기를 일으키고 빨갱이 취급하는 세상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정의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정의실현을 위해 가장 깨어있어야 할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다시말해서 오늘날의 예언자의 역할을 누가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시대의 예언자의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우리자신인 수도자들과 더 넓게는 모든 그리스도교인 입니다. 수도자들은 그 시대가 주는 쾌락과 안락함에 저항하며 생겨났습니다. 교회생활이 안일해 질 때마다 그러한 현실을 비판하며 더욱더 하느님을 철저하게 섬기고자 했던 사람들이 바로 수도자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되어 있기에 안일해 질수 있는 사람들이 또 수도자들입니다. 수많은 유혹들 앞에서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본분을 잊기도 합니다. 오늘 군중들과 세리들이 물었던 것처럼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해야겠습니다. 우리의 삶이 생겨난 이유와 삶의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신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사실 신자들도 우리 수도자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신자들도 정의의 예언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실 신자들이야 말로 사회의 일선에서 활동하는 하느님의 행동대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신자들은 가장 힘겨운 예언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언자는 세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보고 계시는 하느님 때문에 힘을 얻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군중과 세리들과 군인들이 물었던 것처럼 신자들도 함께 물어보아야 합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리스도교는 안락하고 귀족적인 사교 모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는 본디 역동적이고 생기있는 투쟁의 종교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교가 처음 생겨날 때부터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세우셨는지를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당시 안일한 생각에 젖어있던 유대인들 특히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사이에서 예수님께서 어떤 투쟁을 겪으시면서 복음을 실현하고자 하셨는지를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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