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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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성녀 오딜리아 동정 대축일(2012.12.13)-이 사바 신부 12-12-15 09:51:5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335   

    오늘 우리는 형제들 모임 가운데 우리 연합회의 주보이신 성녀 오틸리아 축일을 지냅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달력과 이미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 전례력 가운데에 걸쳐진 이 축일을 맞이할 때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 보고 또 앞으로의 방향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은 “눈먼 이들에게 빛을”이라는 모또 아래 선교의 기치를 내세우는 우리 연합회의 주보 성녀 축일을 맞이해서 우리의 선교 사명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2009년 백주년 행사를 통해 그동안 우리 선배 수도자들이 이 땅위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노력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지만 굳이 거창하게 백년 역사를 들먹이지 않아도 제 연배 이상쯤 되는 분들은 왜관 감목대리구 시절, 우리 수도원이 다양한 사목, 사회복지, 교육 그리고 문화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를 기억할 것입니다. 물론 당시의 정치 사회 그리고 종교적 상황이 그런 활동을 필요로 했고 그 필요에 수도원이 응답하고 채워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왜관 감목대리구를 포기한 이후 우리 수도원은 수도승으로서의 정체성과 내적 역량을 쌓는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선교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가능한대로 선배들이 시작한 사업들을 유지하려 노력하였고, 그동안 쌓아온 우리들의 영적인 유산들을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고, 또 우리의 공간도 함께 공유하기 위해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에 대한 우리 형제들의 생각은 형제들 수만큼이나 다양하고 또 여러 가지로 갈라져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선교의 필요성 자체에 의문을 던지거나 갑자기 주어진 선교라는 주제 앞에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젊은 형제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반대로 아프리카나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는 것만 막연히 동경하는 형제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수도생활 전체가 그러하듯이 우리 각자가 매일 일하고 있는 소임 자체도 우리의 노동을 통해 얼마를 벌어들이느냐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사회에 대한 봉사이며, 그래서 하나의 선교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제 공동체가 함께 선교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선교 연합회에 속한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면에서, 공동체의 역량을 집중하고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 선배들이 꾸려왔던 한 공동체의 역사를 단절 없이 이끌어가기 위해서라도 한 번은 거쳐야 할 단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국 사회도, 한국 교회도 우리 선배들이 활발히 활동하던 시절에 비해 많이 변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많이 변했습니다. 하지만 선교는 보편 교회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이며 목적입니다.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지상 명령을 받아 수행하기 때문이고 수도생활 역시 이 교회의 보편 사명에 나름대로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교 사명을 되돌아보기 위해 선교에 대한 교회의 시각 변화를 한 번 짚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선교교령 6항에서만 해도 선교란 그 자체로 ‘파견’을 뜻하며 복음 선포자들이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민족이나 지역에 파견되어 복음을 전하고 교회 공동체를 건설하는 활동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반면 이미 세례성사를 통해 신자가 된 사람들의 영적생활을 돌보는 활동은 사목이라하여 선교와 구분했습니다.

    그러나 1974년 세계 주교 시노드 이후 교회는 복음화라는 개념을 도입하였습니다. 복음화는 종래의 선교와 사목의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복음적 생활로 인도하는 교회의 사명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지금은 교회 안에서 과거의 선교라는 단어가 복음화라는 단어로 거의 전부 바뀌어가는 추세인 것처럼 보입니다. 어쨌든 교회는 끊임없는 쇄신으로 자신이 먼저 복음화되면서 이 세상을 복음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런 복음화의 빛에 선교의 개념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제 선교란 복음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전파되는 물리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영적인 움직임으로 보며, 무엇보다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개방성과 융통성으로 해석합니다. 결국 선교의 근본적인 지향은 새로운 영세자의 증가가 아니라 교회가 가진 것을, 그리고 닦아온 것을 세상에 내어놓고 함께 나누는 친교와 나눔입니다. 그런 친교와 나눔 속에서 교회 스스로도 쇄신되고 모든 사람들을 복음적 생활로 이끄는데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진정한 수도생활의 의미 역시 수도원의 담장을 점점 더 높이 쌓고 그 안에 안주하는데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노트커 볼프 수석 아빠스님의 표현처럼 “베네딕도회는 근본적으로 선교적이다.”라는 경지까지 이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교회의 복음화 활동에 발맞추어 친교와 나눔을 향해 우리를 개방하고 내어주어야 할 필요성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무엇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찾기 위해서 지금 세태와 상황을, 그리고 우리가 가진 역량을 되돌아보기 위한 노력 역시 필요할 것입니다.

 

    교회의 복음화라는 개념은 안으로는 수도승 밖으로는 사도라는 결코 융합하기 쉽지 않은 우리의 과제에 한 줄기 빛과 방향을 비추어 줍니다. 이제 구체적인 것은 우리가 고민할 때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대로 등불은 켜서 지하실이나 됫박 밑에 쳐박아 두는 것이 아니라 등경 위에 얹어 놓아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등경을 어디에 준비해야 할지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오늘 성녀 오틸리아의 축일을 맞아 형제들과, 그리고 우리의 영성을 함께 나누는 모든 이들과 함께 우리의 선교를 생각하고 머리를 맞대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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