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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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대림 1주일(다해, 2012.12.2)-안 호영베드로 신부 12-12-06 09:36:5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661   

Theme: 기다림은 희망이다.

 

Introduction

대림 첫주입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매년 으레껏 맞이하는 성탄절이 아니라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으로 성탄을 준비해야겠습니다. 기다림은 희망입니다. 기다림이 있기에 우리가 사는 이곳은 살아볼 만한 곳임에 틀림없을 겁니다.

 

Homily

A

벌써 교회 달력으로는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는 대림 첫주일이 되었습니다. 대림절은 주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어제 1 저녁기도 때 대림초에 하나의 초에 불을 밝혔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림 2주, 3주, 4주에 초가 불을 다 밝히면 예수 성탄 대축일을 맞이합니다. 제대 옆에 놓인 초에 불을 다 밝혀지는 것은 한주 두주 이렇게 시간이 다가오면 당연히 밝혀집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안의 불은 올해 성탄이 와도 내년 성탄이 와도 내가 그 불을 켜지 않으면 켜지지 않을 겁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간 개념에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있습니다. 크로노스는 하루, 일주일, 한달,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매일 매일 반보되는 일상적인 시간입니다. 그런데 카이로스라는 시간은 희랍어 개념으로 넘어오면서 성경에서 표현하는 ‘때가 찼고 하느님 나라가 가까웠다’고 하는 그 ‘때’를 가리키는 시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 받은 민족임에 틀림없습니다. 선택받은 민족임에 틀림없습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가 미국이고, 미국을 지배하는 민족이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그런 유대인들의 역사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역사였습니다. 아직도 그들은 그들의 민족을 구원시켜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담으로 시작하여 아브라함까지 2천년, 그리고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2천년, 구약의 시대라고 하는 4천년동안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예수가 세상에 오셨는데 그들은 그 예수를 메시아라고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 민족만을 구원해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 세상 종말이 올 때까지 그들만이 기다렸던 메시아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한 유다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그 기다림을 안고 살아갔습니다. 그러기에 험한 세상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70년에 그들의 터전인 예루살렘이 로마 병사들에 의해 깡그리 짓밟히고 2000년 동안 세계 여기저기 흩어져 살았습니다. 1948년에 2000년 전의 땅으로 다시 들어가기까지 그들은 그들의 민족을 구원해 줄 메시아가 오리라는 확신을 잃지 않았습니다.

 

B

기다림은 희망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람은 뭔가를 기다릴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기다림이 없다면, 그저 매일의 생활을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살아간다면 아무런 삶의 의미가 없을 겁니다.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기다림이 없이 그저 매일 매일 먹고 자고 하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시지프스의 바위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 시지프스에게 가해진 형벌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올리는 것입니다. 다 왔다 싶으면 바위는 또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집니다. 시지프스는 다시 그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올려야 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가혹한 형벌 중 하나가 벽돌쌓기라고 합니다. 벽돌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벽돌을 다시 저쪽에서 이쪽으로 옮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런 형벌에 처해지면 일년도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만다고 합니다. 실제로 러시아 수용소에서 공산주의를 반대했던 사람들에게 가해진 처벌이었습니다.

뭔가를 기다림이 없이, 뭔가를 바라보며 희망함이 없이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없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러한 삶이 주어진다면 그 삶은 죽음과 같은 삶이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절대적인 삶의 원동력은 희망일 겁니다. 뭔가 바뀔 수 있다는 희망, 뭔가 변화될 수 있다는 희망, 기다림 속에 그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면, 설령 지금 주어진 삶이 벽돌 옮기는 것 같은 삶이라도 그 삶은 살아볼 만한 삶임에 틀림없을 겁니다.

 

A'

대림 첫 주를 맞이했습니다. 무엇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희망입니다. 희망할 수 있는 사람은 주어진 삶이 힘들더라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축복된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고, 또 언젠가 오실 예수님을 기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고개 들어 옆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뭔가 근심꺼리를 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할머니가 고해소에 들어와서 ‘사는 게 다 죄지요. 얼른 사죄경이나 주이소’라고 했듯이, 어쩌면 불교에서 말하는 ‘삶이 고통의 바다’라고 하는 말은 맞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갈구하고 욕망하고 얻기 위해 싸워야 하는 삶 자체가 고통의 바다인지도 모릅니다.

설혹 그 고통의 바다 한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언젠가 오실 예수님을 기다린다면 시지프스의 형벌을, 벽돌쌓기의 형벌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견뎌낼 수 있을 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언젠가 오실 예수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은 살아볼 만한 곳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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