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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한가위 명절미사(2012.9.30)-김 폴리카르포 원장신부 12-10-01 23:20:2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387   

2012년 9월 30일/ 연중 제26주일/ 한가위(백)/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 없음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 한가위 명절 전례의 의미 -

김종필 폴리카르포 수사신부

 

오늘 우리는 추석(秋夕) 명절, 한가위를 맞아 미사전례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에서는 주님의 날인 오늘 ‘한가위 미사 전례’를 드리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1986년 주교회의 춘계 총회 결정인 ‘설과 한가위가 주일에 겹치는 경우’에 대하여, 그리고 주교회의 2005년 춘계 정기총회에서 승인된 「미사 경본 총지침」 373항에 따른 것입니다. 즉 “한국에서는 한가위(음력 8월 15일)에, 오랜 전통에 따라 땅에서 얻은 소출에 대하여 감사하고 조상들을 기리며 가족의 우애를 다지는 축제를 지낸다. 한국 교구들에서는 이날 ‘한가위’ 명절 전례를 거행한다.”

 

추석(秋夕) 명절은 단군기원 2365년(신라 3대 유리왕 9년)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기원과 유래가 분명한 우리나라의 고유한 민속 명절입니다.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조상들의 음덕을 기려 섬기는 기제사(忌祭祀)에 따르는 명절제사와 살아 있는 후손들이 화합하여 즐기는 미풍양속이 합쳐진 아름다운 문화입니다. 송편, 인절미, 토란국 등등의 음식이 등장하고, 줄다리기, 씨름, 강강술래 등등의 놀이로 즐기며 조상을 섬기는 풍속이 떠오릅니다.

조선 후기 문인 유만공은 “누렇게 익은 들녘 풍작을 보니 모든 것이 새로 나고 맛난 것들일세. 다만 원컨대, 한 해 먹을 것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과 같은 한가위만 같아라”고 읊었습니다. 더없이 소중한 홀로 이면서 더불어 아름다운 사람들이 잠시나마 존재의 자리로 깊이 서로를 바라보게 하는 기묘한 어울림의 때입니다. 고운 정이나 미운 정을 넘어 생명 있는 모든 존재의 밑뿌리를 비쳐보게 하는 절기의 명절입니다.

 

이 시간 다시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자리로 나아갑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작가 박경리의 유고시집에 실린 <한>이란 시(詩)가 떠오릅니다. 홀가분하지 못하게 길게 머물렀던 그 시(詩)의 전문은 이렇습니다. “육신의 아픈 기억은/ 쉽게 지워진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덧나기 일쑤이다/ 떠났다가도 돌아와서/ 깊은 밤 나를 쳐다보곤 한다/ 나를 쳐다볼 뿐만 아니라/ 때론 슬프게 흐느끼고/ 때론 분노로 떨게 하고/ 절망을 안겨 주기도 한다/ 육신의 아픔은 감각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삶의 본질과 닿아 있기 때문일까/ 그것을 한이라 하는가”

무엇을 하느라고 여지껏 흘러왔는지 다 헤아려지지 않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여유롭지도 자유롭지도 못한 스스로의 실상을 바라봅니다. 오늘 교회가 한가위의 미사 전례의 의미를 고양시키려고 선택한 미사의 제1독서와 제2독서와 복음 말씀을 생각합니다.

 

 제1독서인 요엘서(2,22-24.26ㄱㄴㄷ)의 말씀 중에 “두려워하지 마라” “풍성한 결실을 내리라” “즐거워하고 기뻐하라”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등등의 구절들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분위기는 우리네 추석 명절의 의미와 잘 어우러집니다. 그 모든 것이 ‘가을비’와 ‘봄비’로 이루어지는 풍요로운 결실로 드러나는 하느님의 은혜로운 손길이요 놀라운 축복입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주님의 날’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이지만, 오늘 교회는 추석 명절을 맞는 우리의 현실이 바로 그렇게 열리기를 염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 제2독서인 요한 묵시록(14,13-16)의 말씀은 추석 명절의 또 다른 의미로 선조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은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먼저 돌아가신 ‘생명의 책’에 기록된 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바오로 사도의 신앙에 따르면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로마8,18 참조). 우리로 하여금 헛된 것을 보지 않는 바른 마음으로 주님의 법,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일깨웁니다.

 

 오늘 복음인 루카 복음 12장 15-21절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앞뒤에 있는 다음과 같은 말씀들이 마음을 많이 부대끼게 합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하지 못한 사람은 어리석은 부자이다” 불가(佛家)에서 삼독심(三毒心)이라고 하는 탐진치(貪瞋痴)를 생각하게 합니다. 지나치게 탐하고 욕심내는 마음, 증오하고 미워하는 마음, 사리(事理)를 모르는 어리석은 마음 등은 번뇌를 일으키는 근원이고 모든 죄악의 뿌리라고 합니다.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는데 대하여 교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무지한 채로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놓치지 않고 지혜로운 말씀으로 우리를 깨우쳐주십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주님은 우리에게 탐욕은 악마의 함정이요 하느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새 삶’을 살기 위한 길에서 ‘탐욕은 우상숭배’라고까지 합니다.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콜로 3,5). 탐욕은 악한 영들의 올가미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옭아매어 환락의 착각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게 합니다. 그런 까닭에 주님께서는 ‘주의하여라’ ‘경계하여라’는 말씀으로 ‘탐욕’에 대하여 준엄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하지 못한 사람은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듭 사람의 생명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지 않으며 재물이 생명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님을 깨우쳐주십니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야말로 복된 사람이요, 영광스런 희망을 지닌 사람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궁핍을 채워주는 사람,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없는 이들의 슬픔을 달래 주는 사람, 나눔과 섬김으로 위에 있는 곳간에 재물을 모으고 하늘 창고에 보화를 쌓는 사람은 하느님 앞에 부유한 사람입니다. 그는 ‘주님의 날’에 자기 덕행의 이자와 바르고 흠 없는 삶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 밤에는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구절초 꽃 잎 마다 내릴 보름달빛으로 저마다의 가슴에 두둥실 보름달이 떠올랐으면 합니다. 옛 사람의 지혜는 스스로 사람다워지려는 자기관리를 수기(修己)라 하고, 남과 어울려 함께 사는 대인관계를 치인(治人)이라고 했습니다. 진정함과 정성스러움으로 스스로를 다스리고 더불어 공경(敬)하고 사랑(愛)하는 아름다운 일상을 살아내는 삶을 새롭게 하는 추석 명절이었으면 합니다. 다시 휘둘러 바라보는 미풍양속으로 깨어나는 추석 명절에 “내가 너의 구원이로다”(시편 35,3)라고 하시는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싶습니다.//壬辰年 秋節에 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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