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회 > 오늘의 강론 > 연중 제7주일(2012): 죄의 용서, 관계의 회복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어떤 중풍병자를 치유하셨습니다. 이 병자의 이름도 얼굴도 나이도 모릅니다. 복음서는 단지 “어떤 중풍병자”라고만 합니다. “중풍병자”라고 번역된 παραλυτικός (paralutikos)는 사지가 마비된 사람을 모두 가리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의학적으로 이해하는 ‘중풍’이나 ‘뇌졸증’이 아닙니다. 그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이 병의 원인이 허약한 육체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내적인 문제 때문에 생긴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시자, 중풍병자는 치유를 받았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 육체의 병은 마음의 문제 때문에 생기는 것 같습니다. 죄는 무엇입니까? 흔히 우리는 죄란 어떤 나쁜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죄를 다 설명하지 못합니다. 근본적으로 죄라는 것은 관계의 문제입니다. 우선적으로 하느님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가 깨지는 것이 죄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관계가 깨지고 어긋나면 사람은 더욱더 자기 자신 안에 갇히게 됩니다. 증오와 분노와 공포 등 감정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노예가 되면 될수록 마음은 병들게 됩니다. 이런 마음 상태에 있는 사람은 이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벽을 쌓게 됩니다. 소통이 마비됩니다. “제발 나를 혼자 내버려두라”, “혼자 있게 해주라”고 자기 자신에게 소리를 칩니다. 마음이 완전히 자기 속에 갇히게 되면 몸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소화가 안됩니다. 그러다가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어지고 마비됩니다.오늘 복음의 중풍병자도 이러한 내적 원인 때문에 육신의 마비가 왔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병자의 육신을 보신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꽤뚫어보셨습니다. 마음속에 갇힌 불쌍한 한 영혼을 보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당신이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하신 것은 그 사람을 들고 온 네 사람의 믿음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외적으로 내적으로 철저히 갇혀 있던 사람을 주님께 인도한 사람이 바로 그를 잘 알고 그를 깊이 신뢰하고 그를 늘 지켜보고 있던 이웃이었습니다. 이 이웃들이 중풍병자의 그 큰 고통을, 내적인 고통과 외적인 고통을 함께 아파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주님께 데려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분명 현존하고 계십니다. 이분이 우리 가운데 계신 이유는, 당신이 분명히 천명하신 대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가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죄의 용서는 다른 말로 관계의 회복입니다. 분노 속에 묶인 것을 풀어주고, 자기 속에 갇힌 것을 열어주며, 실망과 절망 속에 파묻힌 것을 꺼내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모두가 죄의 용서, 관계의 회복을 위한 일꾼들이 되어주기를 원하십니다. 중풍병자를 들것에 실어 주님께 데려온 사람들처럼 우리들 역시, 삶에 지친 이들, 마음이 굳게 닫힌 이들, 사람들과의 관계가 깨어진 이들을 당신께 데려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사랑은 발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안아줄 때 사랑은 걸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주위에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는 누구입니까? 우리 사이에 이런 분들은 없습니까?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