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8주일

2011년 2월 27일-가

마태 6,24-34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주님의 날인 오늘 비가나립니다. 절기상으로 입춘이 지나가고 우수(雨水)와 경칩(驚蟄) 사이에 내리는 비이니 봄비인가 합니다. 이렇게 조춘(早春)을 알리는 궂은비가 내리는 오늘 같은 날은 어떻습니까? 이런 날도 저는 좋아합니다. 따끈한 차와 함께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이라도 들으면서 오는 비를 맞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움이 일어납니다.

오늘 복음인 마태오 복음 6장 24-34절의 말씀은 자연의 이치로 마음을 열어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 하지 않느냐?”

여기에 뭔가를 덧붙이면 도리어 어려워지거나 혼란스러워질 것 같습니다. 그냥 묵언 중에 머무는 것이 더 크게 이롭겠다는 생각입니다. 뒤이어 “하늘의 새들”이나 “들에 핀 꽃들”이란 표현이 우의적인 의미로 등장합니다. 강짜를 부리거나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하지 않고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알아듣도록 물 흐르듯이 펼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이 말씀 보다 앞선 삶의 자리에는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숨을 부지하려고 걱정하지 마라.”고만 하시지 않고, 그 이유를 설명하시는 말씀으로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재물의 해가 어떠한지를 알려주시면서 참된 삶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을 일깨웁니다. 우리가 입을 수 있는 해는 재물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재물’은 아람어로 ‘맘몬’입니다. 맘몬은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힘을 지닌 존재로 ‘재물’ 또는 ‘돈’을 지칭합니다. 큰 힘을 지닌 까닭에 재력(財力) 도는 금력(金力)이라 합니다. 그것들은 마력을 발휘하거나 역신으로 둔갑하여 인간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실상 맘몬은 섬길 상전이 아니라 부릴 종놈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는 전적인 포기를, 일반 청중들에게는 나눔의 정신으로 기꺼이 빈자(貧者)를 도우라고 촉구하십니다.(｢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에서)

오늘 복음말씀 중에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깨닫도록 해주시는,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에 이끌립니다. 지금 이 시간 ‘하늘의 새들’이나 ‘들에 핀 꽃들’로 하시는 말씀 앞에, 먹고 마시는 음식이나 몸에 걸칠 의복은 걱정할 것이 없다는 비현실적인 말씀에도 불구하고 그렇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이란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는가? 오늘도 하느님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나아가게 될 요한복음서에서 말씀하시는 생명, 영원한 생명의 길이 생각납니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란 말씀과 더불어 하느님의 뜻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람’, 즉 사랑의 이중계명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삶은 결코 녹녹한 여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하면 하느님께서 음식과 의복도 보태어 주신다는 말씀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의식주(衣食住)에 연연하는 일상생활에 매달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추종하는 제자의 길에 수반될 수 있는 근심걱정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시는 초대의 말씀에 전폭적으로 승복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우리는 ‘맘몬’으로부터 그렇게 자유롭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추종하는 성직자들이나 수도자들의 삶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세상 한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교회나 수도원이 겪게 되는 크고 작은 금융사고가 이를 말해줍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오늘날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귀담아듣고 가슴에 새겨 실행해야 할 말씀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는 말씀으로 다시 깨어나는 지혜와 분별이 필요합니다.

열왕기 상권 3장에 나오는 솔로몬의 꿈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이제 막 왕위에 오른 솔로몬의 꿈에 야훼 하느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하고 물으십니다. 솔로몬은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어느 누가 이렇게 큰 당신 백성을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솔로몬이 청한 것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이 청하지 않은 부(富)와 명예도 주고 수명도 늘려 주겠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시간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는 말씀이 스스로를 부대끼게 함을 알아차립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의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위로를 삼습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야훼)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야4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