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5주일

2011년 2월 6일-가

마태 5,13-16

입춘(立春)이 지나 벌써 생명이 기지개를 펴는 봄에 교회는 연중 제5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이사야 예언서 제3부(56~66장)는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와 그들의 삶을 재건해야 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상숭배나 불의한 행동 등 예전의 실수를 되풀이 합니다. 오늘 제1독서인 이사야서 58장은 ‘참된 단식’ 에 대해서 들려줍니다. ①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는 것 ②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③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버리는 것 ④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는 것 ⑤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⑥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는 것 ⑦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

이와 같은 “나눔”을 실천하면, 만사형통(萬事亨通)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이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가리켜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복음 8장 12절; 9장 5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당신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the salt of the earth)이다. … 너희는 세상의 빛(the light of the world)이다.”(마태오복음 5장 13절. 14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세상의 소금(the salt of the earth)라는 말은 “꼭 필요한 사람, 존경스러운 사람, 혹은 그런 공동체”을 가리킵니다. “세상의 소금”이라고 할 때 중요한 것은 ‘짠맛’입니다. 짠맛은 부패를 방지하고, 맛을 내며, 갈증을 유발하는 역할을 합니다. 지금 주님의 식탁(말씀의 식탁과 성찬의 식탁)을 중심으로 함께 모인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라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아내도록 살아야 합니다. “저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일까?”

예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소금의 역할을 먼저 하고, 그 이후에 겉으로 드러나는 빛의 역할을 하기를 바라십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그 빛을 세상에 비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빛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죄와 어둠을 고치고 용서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습니다. 즉, “신앙인은 어려움을 함께하는 것이 쉬운가, 즐거움을 함께 하는 것이 쉬운가?” 이러한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훨씬 쉽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움을 함께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고통을 분담하고 감수할 수밖에 없지만, 어떠한 고통 분담도 없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양자강 유역에서 오월(吳越)이 패권(覇權)을 타투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월왕 구천을 도와 회계산의 치욕(=회계지치 會稽之恥)을 설욕케 한 범려는 월왕 구천을 평하여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남기고 그를 떠납니다.

우리 수도원 한국진출 100주년 기념으로 공개된 “사랑으로 돌아온 겸재 정선 화첩” 중에 중국 역사 속 인물고사를 소재로 삼아 그린 고사인물화 중 춘추시대 말기 월왕 구천의 명재상 범려가 사직하고 가족과 함께 떠나는 장면인 '풍파소처(風波少處)'란 작품이 바로 그것입니다.

“일감을 나누기보다 떡을 나누기가 더 어렵다”는 옛말이 그렇습니다. 즐거움을 함께하기 어려운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즐거움은 다만 즐거움 그 자체에 탐닉하는 것으로 시종일관(始終一貫)하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세상의 소금이 되고,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까? 마태오 복음에 따르면, 진복선언(마태오 5장 3-12절)에 따라 산상설교의 요구대로(마태오 5장 17절~7장 12절)살면 됩니다.

‘세상의 소금’이라는 상징어의 본래 뜻은 “그 무엇이나 본래 좋은 것이라도 변질된다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에 따르면,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그리스도 교회야말로 세상의 부패를 막고 세상의 어둠을 비추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한편으로 세속에 적응하되, 또 한편으로는 그 타락하고 어두운 현상에 저항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과 교류할 당시 코린토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중 대단히 유명한 항만도시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한낱 인간적 지혜로 변질시킬 위험을 내다보며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지혜를 강조하기 위해 인간적 지혜와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대비시킵니다. 바오로 사도의 목적은 코린토 신자들로 하여금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닌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1코린토 2장 5절)이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믿음은 그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흔히들 세상에서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진리(眞理)와 순리(純理)에 맞추려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하느님이 보시기에 참 좋은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변화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직한 어리석음, 그것이 곧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고 내용입니다. 이것이 다름 아닌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소명이라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