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일

2011년 1월 30일-가

마태 5,1-12ㄴ

도입말

세상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찾습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은 저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 걱정 없이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 혹은 남보다 더 나은 삶의 조건을 누리는 것을 행복이라 착각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행복이란 먹고 마시는 일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소유의 대상도 아닙니다. 행복이란 기쁘고 보람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에서 우러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고자 하는 행복이 무엇이며, 또한 지금 우리가 누리는 행복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해 봅시다. 형제 자매 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우리 죄를 반성합시다.

강론

우리는 새해를 세 번 맞이합니다. 교회가 따르는 전례력으로는 작년 12월 1일, 대림 제1주일에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통용되는 양력, 교황 그레고리오 14세가 정한 달력에 따르면 새해는 1월 1일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다른 한 해의 시작을 기다립니다.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음력으로는 정월 초하루, 설날이 이번 주 목요일에 옵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면 우리는 서로에게 복을 빌어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게 정말 복인지 재앙인지도 모르는 것을 서로에게 축원하기도 합니다. 몇 해 전부터 등장한 ‘부자 되세요’ 라는 새해인사가 그렇습니다. 대박을 꿈꾸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덕담으로 들릴지 몰라도 제 귀에는 악담으로 들립니다. 이 말은 ‘당신네 집안이 손자 대에 가서 폭삭 망하기를 바랄게요!’ 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삼대를 넘기기 힘들다는 옛 어른들의 말도 있거니와 그런 일은 우리 주위에서 비일비재합니다.

물론 옛 어른들이 복으로 꼽는 다섯 가지 덕목에 부가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살 만큼 재물이 넉넉한 것을 이르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모은 재물로 흥청망청 사는 것이 복이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오복은 유교 경전인 사서오경 중의 하나인 서경에 나옵니다. 서경 홍범 편은 수, 부, 강녕, 유호덕, 고종명, 이렇게 인간이 누리기를 원하는 다섯 가지 복에 대하여 말합니다. 수는 오래 사는 것을 말하고, 부는 물질적으로 넉넉하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부유해도 건강을 잃으면 소용이 없으니 그보다 나은 복은 강녕, 곧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입니다. 유호덕은 선행을 하며 덕을 쌓는 것이고, 고종명은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쉽게 수긍이 가는 내용입니다. 아울러 여기에 명예라는 덕목이 추가된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라는 개념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오늘 복음에서 행복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시는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산상설교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산상설교는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설파했던 첫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이끄심에 힘입어 광야에서 홀로 마귀와 싸우면서 깨달았던 바, 곧 하느님의 지혜가 그대로 녹아있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행복선언을 실제적인 삶과 연결시키지 않고 단지 영적인 교훈으로만 해석했습니다. 이 선언을 불행한 현실을 사는 사람들이 내세에 가서 받을 보상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해석이 이러하다면 우리는 가난하고 굶주리는 형제들에게 “지금은 배고프고 힘들겠지만 참으십시오. 저 세상에 가서는 배부르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기다리세요.” 라는 알량한 위로의 말 밖에는 해 줄 일이 없어집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슬퍼하며 억압받는 이들은 나중에 하느님께서 상급을 주시고 위로하실 것이므로, 하느님의 소관이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인 셈입니다. 그러나 행복선언은 현실의 불합리한 상황이나 비참한 조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과 조건들을 개선시키려고 아등바등 애쓰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는 가르침입니다.

흔히 행복이란 평안, 안락, 명예 같은 인간의 욕구가 실현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전하는 행복은 이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말하는 행복은 욕구를 추구하는 일이 전혀 아닙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정의에 헌신하는 사람, 자비로운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을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욕구 충족을 통하여 자신만의 행복을 찾으려고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주변에서 행복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인간이 하느님 앞에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가난한 존재임을 인정합니다. 또한 그들은 이런 보잘 것 없는 인간들이 자기 이기심만을 내세우면서 서로 다투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는 현실을 슬퍼합니다. 비정한 세상에서도 따뜻한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그들은 진정 온유한 사람들이며 한편 불의한 사회를 향해 정의를 외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이런 용기는 억압받는 이웃들, 사람대접 받지 못하는 낮은 이들을 향한 자비와 연민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정의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불의한 세상과 싸웁니다. 자신을 버렸으니 사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사심이 없는 사람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이며 설령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더라도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더 아름답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몸소 자신의 가르침을 실천하였고 그로 인하여 자신이 하느님의 복된 아들이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없는 이들, 아픈 이들, 못 배운 이들, 무시당하고 서럽던 이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보여주시려고 분투하셨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사들 그리고 로마제국과 맞서 싸우던 힘든 삶이었지만 마음 한가운데서부터 행복과 기쁨이 솟아올랐기에 예수님은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진정한 행복과 기쁨은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룩하기 위하여 자신을 내던질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 땅에 이룩될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몫이 될 것이므로 그들을 진정 복된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하여 반드시 정의를 부르짖고 투쟁하면서 제도와 체제에 맞서서 싸워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각자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소명과 은사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하느님나라 건설에 동참합니다.

그런데 이 일에 동참하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영적 투쟁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악마와 싸우면서 정화의 시간을 보낸 것처럼, 우리 마음을 닦고 고요하게 만들어서, 우리 자신이 성령의 거처가 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움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적 투쟁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이지만 특히 수도자들의 소명입니다. 침묵과 기도 그리고 여러 가지 금욕 수행 통하여 얻어지는 영성이 세상을 향한 자극이 되고 아울러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동방에서 시작한 수도승 생활을 서방에 전한 요한 까시아노에 따르면 이 영적 투쟁의 목적은 마음의 순결, 즉 깨끗한 마음에 이르는데 있습니다. “복되어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 하느님을 뵙게 되리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하느님의 현존 안에 삽니다. 하느님을 뵙고 사니 바로 그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 이것이야 말로 천국의 삶이요, 진정한 행복입니다. 엄격한 수도생활 역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길입니다. 수도생활은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기 위한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비우고 그분의 뜻을 따르고 섭리에 순응하는 수도생활은 참된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입니다.

강론을 마무리하며 3박 4일간의 수도생활체험학교를 마치고 오늘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참된 행복을 원하신다면 수도공동체의 문을 두드려보십시오. 구하는 자에게는 주시고, 두드리는 자에게는 열어주시는 주님께서 놀라운 것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물론 주님께서 거저 주시지는 않겠지만, 그 고통의 눈물보다 값진 기쁨과 행복을 선사하실 것입니다. 모쪼록 아름다운 청춘이 가기 전에 그 길을 찾기를 바라며, 여러분 모두의 건승을 빕니다.

복되어라, 주님을 두려워하고 그 도를 닦는 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