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세례 축일 강론

2011년 1월 9일-가

마르 3,13-17

수도원 안에서 지내다 보면, 아주 가끔씩은 열정에 불타서 기도생활과 소임을 적극적으로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저냥 흘러가는 대로 시간이 되면 일어났다가, 시간이 되면 기도하러 성당엘 가고, 또 시간이 되면 식사를 합니다. 그러다가 또 아주 가끔씩은 몸과 마음이 축 쳐져서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하루하루를 연명할 때도 있습니다. 이때에는 누가 나 좀 건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형제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지길 희망하고, 실제로 형제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기도 합니다. 군대용어로 소위 짱박히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때로는 자기 혼자 하고 싶은 것만 합니다.

물론 수도원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건, 밖에서 살아가는 그 누구건 간에 누구나 이런 상태를 한번쯤 겪곤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이런 무기력하고 이기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그 상태에 머무를 때, 그런 삶의 모습이 바로 나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나 사회, 그밖에 자신이 속한 여러 공동체에 크나큰 피해를 주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는 사실은,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대며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함께 살아가는 것을 잊고,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나에게 주어지는, 내가 해야만 하는 것들을 들여다보길 두려워하고 피하곤 합니다. 이럴 때에 내가 속한 공동체는 단지 그 한 사람이라는 지지대가 잠시 슬며시 도망갔을 뿐인데, 그 기초부터 흔들리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차라리 없었더라면 모르겠는데, 괜히 있어서 신경 쓰이게 되고 때론 화도 납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 가족 안에서 자신으로 인한 불화가 끊이질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나 자신이 그러한 나 자신을 잘 깨닫지 못하고, 그러한 일이 있는지에 대해 점점 무신경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도대체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까요?

오늘 복음에서, 그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굳이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셨던 예수께서는 오히려 당신 자신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고백하는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분은 세례자 요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이대로 하시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 간단한 말씀에 요한은 자기 의견을 바로 접고 그대로 그분 뜻을 따릅니다. 이어 하늘이 열리고 영이 예수님께로 내려오며, 하늘에서 소리가 울립니다. 이러한 하늘의 열림과 성령의 모습,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를 과연 예수님만 들었겠느냐, 다른 사람들도 들었겠느냐하는 소모적인 논쟁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마태오 복음사가가 예수님의 세례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나는 그를 어여삐 여겼노라”라는 하늘에서 들려온 선포로 이해하여 오늘 봉독된 이사야서의 첫 구절과 연결시킴으로써, 그분의 사명과 우리의 뒤따름을 제시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는 먼저 세례자 요한에게 당신의 신분이나 세례의 필요성 여부를 떠나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 해야만 하는 의무를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예수님 세례 후 나타나는 하느님과 아들과 영이 함께 어우러진 완전한 공동체의 상황에서 이사야서 주님의 종의 노래가 선포됩니다. “나는 그를 어여삐 여겼노라(200주년; 내 마음에 드는 이다 - 새번역).” 그는 바로 하느님의 영을 받고, 하느님이 붙잡아 주신 사람이기에,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요란스럽게 자신을 드높이면서 하지 않고, 오히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듯이 잔잔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작은 것은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지치는 일 없이, 기가 꺾이는 일 없이 해냄으로써 마침내 온 세상에 하느님의 의로우심, 하느님의 정의, 하느님의 공정이 펼쳐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세례 받으실 필요가 없으셨지만, 세례라는 사건을 통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랑 공동체 안에서 마땅히 해야 하는 당신의 사명을 수행해 나가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성령께서 그분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나약한 인간으로 태어나 한 가족의 일원이 되었으며, 이어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또한 수도 서원을 하거나 준비 중인 우리 수도자들은 단번에 이루는 약속이지만 그 자체로 영원한 약속, 동시에 나날이 갱신되는 새로운 약속을 함으로써 하느님 안에서 또 한 번 새로이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태어나고, 또 새로이 태어남으로써 가정 공동체, 신앙 공동체, 수도 공동체 안에서 마땅히 살아야 하는 우리의 삶과 사명도 부여받았습니다.

우리가 그 사명을 수행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 나 자신이 가족과, 공동체와 얼마나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 자신 뿐만 아니라 공동체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얼마만큼 나와 함께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어지러워질 때, 예수님의 세례와 그분의 십자가를 향한 공생활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삶을 떠올립시다. 수도 선배들께서 말씀하시듯이 첫 마음을 떠올립시다. 아울러 우리의 몸과 마음을 더욱 새로이 합시다. 늘상 새로이 마음을 다잡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공동체와 함께 갑시다. 우리 모두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나는 그를 어여삐 여겼노라”는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주어진 사명을 기쁨으로 살아가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