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3주일

2010년 12월 12일-다

마태 11,2-11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 보게 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듣고 보는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리시오.

눈먼 이들이 보고

절름발이들이 걸으며

나병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일으켜지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습니다.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됩니다.“

그들이 떠나자 예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무엇을 구경하러들 광야로 나갔습니까?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입니까?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습니까? 고운 옷 입은 사람입니까? 알다시피 고운 옷 걸친 사람들은 왕궁에 있습니다.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습니까? 예언자입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말하거니와, 요한은 예언자보다도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으로 말하면 ‘보라, 내 심부름꾼을 먼저 보내니 그가 너에게 앞서 네 길을 닦아 놓으리라”고 씌어 있는 그 사람입니다. 진실히 말하거니와, 여자 몸에서 태어난 사람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큰 인물이 난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큽니다.”

도입말

대림 시기가 어느덧 삼 주째로 접어들었습니다. 오실 그분을 기다리는 우리의 염원이 점점 고조되고 있으며, 그와 비례하여 기쁨과 설렘도 커집니다. 한국교회는 오늘을 자선주일로 정해 어려운 이웃들을 기억합니다. 기도와 단식과 더불어 교회의 전통적인 속죄와 보속행위인 자선은, 말 그대로 사랑의 실천입니다. 성탄을 기다리며 행하는 여러분들의 사랑의 실천은 아기 예수님께 참으로 좋은 선물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 공동체는 그제 돌아가신 황 다미아노 신부님과 마지막 작별의 순간을 기다립니다. 덕원에서 시작된 신부님의 수도여정이 왜관에 이르러 꽃피기까지, 신부님을 이끌어주신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아울러 신부님께서 공동체를 위해 쏟았던 노력과 헌신적 사랑에도 감사드리며 이 미사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우리의 죄를 반성합시다.

강론

대림 시기의 중반을 넘어서는 이 시점에, 우리의 기다림이 따분함이나 지겨움 혹은 지루함으로 변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대림 제3주일을 ‘가우데테Gaudate 주일’이라 하며 특색 있게 보내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Gaudete'는 라틴어로 ‘기뻐하라’ 라는 뜻인데, 오늘 우리가 미사를 시작하며 부른 입당송에 나옵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Gaudete in Domino semper. iterum dico. gaudete.)” 바오로 사도께서 필립비 교우들에게 쓴 서간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기다리던 주님의 탄생이 머지않았으니 더욱 기운을 내어 기쁜 마음으로 재계의 시기를 보내자는 뜻입니다. 그래서 제의 색깔도 보라색 대신 장미색이나 분홍색을 입으며, 대림시기 동안에 금했던 오르간 연주도 오늘만큼은 허용합니다. 사순 제4주일도 레타레Laetare 주일이라 하며 이와 같이 지냅니다.

하여간 이번 주일의 강론주제는 기쁨이 되어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기쁨이란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흔히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들은 비슷하거나 반대되는 개념을 대비시키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기쁨의 의미를 잘 알기 위해서는 그와 비슷한 의미를 갖는 즐거움과 대비시켜보면 됩니다. 즐거움은 우리의 욕구나 욕망이 만족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보통 육체적인 것들과 연결됩니다. 하지만 기쁨이라함은 인간의 내면과 관련이 깊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무슨 말인지 분간이 안 갑니다. 쉽게 말해서 우는 사람을 보고 즐겁다고 하지는 않아도, 기뻐서 우는 사람은 있습니다. 즐거움이 바로 기쁨이 되지는 않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즐거움보다는 오히려 괴로움과 고통이 기쁨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슬퍼하는 사람,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 박해를 받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기뻐하고 신명내라고 하셨는데, 이처럼 기쁨은 외적인 조건과는 상관없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 즐거움은 세상으로부터 오고 기쁨은 하느님으로부터 온다고 합니다. 즐거움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함으로써 얻어지고, 기쁨은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즐거움은 내 의지대로 하면서 얻는 능동적인 행복인데 반해 기쁨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 버리면서 얻는 수동적인 행복입니다. 인위적이고 육체와 물질에 연관된 즐거움은, 오래 지속하면 몸과 마음과 영혼이 망가지지만, 무위적이고 영적인 속성을 지닌 기쁨이 지속되면 몸과 마음과 영혼은 건강해집니다. 이렇게 보면 기쁨이란 성령의 열매이자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주도하시는 자리, 곧 하느님 나라의 속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께서도 하느님 나라란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으로 열매 맺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는 기쁨을 맛보기 위하여 주님께서 우리 안에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소유와 소망과 의지를 우리 안에 오신 그분께 맡겨 드리고 그분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립니다. 참으로 어려워 보이는 일인데, 한편 뒤집어 보면 하느님 나라를 이룩하는 일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저 우리 인생과 이 세상의 주인이 하느님임을 인정하면 됩니다. 이를 회개라고 합니다. 생명, 평화, 사랑, 정의 같은 하느님 나라의 가치들에 반하는 삶의 방향 혹은 인간사회의 제도, 체제 그리고 이념을 거부하는 일입니다. 회개는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서 우리의 발걸음을 돌리고, 빛이신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우리 삶 혹은 세상살이가 기쁘지 않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완전한 회개에 이르지 못했고, 우리 안에 하느님 나라가 세워지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회개하라,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습니다.’ 라는 예수님의 외침은 이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대림 시기를 지내면서 우리의 기다림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향하고 있지만, 실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과 이 세상의 주권자로 등장하실 그날, 바로 구원의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날에는 세상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던 대로 원상 복구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듯이 눈먼 이들이 보고 절름발이들이 걸으며 나병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일으켜지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의 완성되면 인간은 태초에 누렸던 하느님과의 친교도 회복합니다. 따라서 죽음은 더 이상 인간과 하느님을 갈라놓는 장벽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그날이 오면 죽었던 것들이 살아납니다. 황량한 광야와 메마른 땅마저 기뻐합니다. 사막은 즐거워하면 꽃을 피워내고, 수선화처럼 활짝 피고 즐거워 뛰며 환성을 올립니다. 이런 지극한 구원의 기쁨을 향유하기 위하여 우리는 참고 기다립니다.

기다림에는 설렘이 있기에 힘이 납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지겹고 따분하고 지루하기만 한 고통의 과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사야 예언자는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로 용기를 북돋고 있습니다. “너희는 맥 풀린 손에 힘을 불어넣고 꺾인 무릎에 힘을 돋우어라.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굳세어 져라, 두려워하지 말라.” 기다림이란 이렇게 초조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며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다림의 과정인 인내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쉽게 포기하거나 방향을 바꾸어 버립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처럼 우왕좌왕합니다. 오시기로 한 그분과 오실 분을 알려줄 사람을 헷갈리기도 합니다. 정작 오실 그분이 왔음에도 그냥 지나쳐 버리고, 오히려 그분에 대하여 알려준 사람에게 달려가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가우다테 주일을 지내면서 우리의 기다림을 되짚어보고 성찰해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고자 하는 기쁨이 무엇인지, 기쁨의 원천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알고 기다림의 여정을 다시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길을 잃고 헤매고 맙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헛수고이고 물거품이 되어 버립니다. 모쪼록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과 아울러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룩되기를 바라는 여러분들의 기다림이 천상적 기쁨으로 보답 받을 수 있기를 빕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의 오실 날을 기다리는 모든 분들께 야고보 사도의 말씀을 전해 드리며 강론을 맺고자 합니다.

“형제 여러분, 주님이 내림 하실 때까지 참고 견디시오. 보시오, 농부는 땅의 귀한 열매를 기다립니다. 가을비와 봄비를 맞아 열매가 익을 때까지 참고 견딥시다. 여러분도 참고 견디시오. 주님의 내림이 다가왔으니 마음을 굳게 가지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