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일

멀리 퍼져만 가는 그윽한 향기

2010년 11월 7일-다

루카 20,27-38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는 11월 가을에 수도원 곳곳에는 단풍으로 울긋불긋 물들어져 있거나 낙엽으로 떨어져 있습니다. 빨갛고 노랗게 물들여진 단풍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아름다움과 불꽃처럼 타오르는 생명의 활기가 느껴집니다. 물론 땅에 떨어진 낙엽 위를 걸을 때면 사각사각 들려오는 소리에 그만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생겨납니다. 이토록 자연이 주는 생명력은 포근함을 주고 멀리 퍼져만 가는 그윽한 향기와도 같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부활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 또한 신앙인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와 부활은 영원한 생명이라고 강조하시는 예수님과의 논쟁을 볼 수 있습니다. 사두가이파는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와는 달리 율법서에 부활에 대한 내용이 없기에 부활은 믿을 필요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이에 반해 예수님께서는 성조들과 부활에 참여할 자격을 가진 모든 이들은 하느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기에 복된 삶을 추구하는 모든 이들이 부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모두 부활의 자녀인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으로 부활을 증거하며 부활의 향기를 풍깁니다.

그러한 그윽한 부활의 향기를 퍼져가게 한 이들 가운데 대표적인 분이 지난해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이십니다. 생전의 추기경님은 강자에게는 강함을, 약자에게는 약함을 보여주신 교회의 큰 어르신으로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으셨습니다. 누구보다도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할 줄 아셨던 분, 특히 가난하고 약한 이들 편에 서셨던 분, 그분께서 이루시려고 했던 삶은 바로 부활의 삶이셨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듯이 부활의 삶을 실천하셨던 추기경님의 향기는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 증거로 추기경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명동성당에는 많은 이들이 줄을 지어 그분을 참배하려고 모여들었습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 신앙인들도 각자 나름의 향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자신의 몸에서 나는 고유한 향기가 있고, 화장품이나 향수로 묻어 나오는 인위적인 향기가 있습니다. 이러한 향기는 겉으로 드러나는 향기로 우리의 코를 자극하여 좋은 냄새나 쾌쾌한 냄새로 다가오지만 내적인 모습을 감추는 효과도 지니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향기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그윽한 향기로 다른 곳으로 멀리 전달되어집니다. 그러한 그윽한 향기를 지니기 위해서 다시 말해 부활의 자녀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먼저 내 자신을 사랑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 몸과 마음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이고 온전한 내 자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각자의 일터에서 쉴 겨를 없이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몸과 마음을 돌볼 여유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 생활이 지속되면 심신이 지치게 되어 모든 일에 대해 의욕이 부족하게 됩니다. 만약 내 생활이 바쁘다면 오히려 한 템포 늦출 필요가 있습니다. 여유 있는 모습은 나뿐 아니라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또한 긍정적인 시각과 태도를 가지며 생활하면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닥쳐왔을 때 이를 피하기보다는 정면에서 마주보게 되고 편안한 맘으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물론 내 자아를 인정하며 살아간다면 남과 비교하거나 외부로 오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부활의 향기가 피어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상대방에 대해 조금은 신경 쓸 필요가 있습니다. 너그러움과 상냥함으로 상대방을 대하게 될 때 스스로 말이나 행동에서 조신하게 됩니다. 아주 작은 배려심이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줍니다. 그 배려심은 우리 일상 안에서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비롯됩니다.

그윽한 향기가 나기 위한 또 다른 하나는 생명 있는 모든 것을 잘 돌보는 것입니다. 갈수록 많은 이들이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무감각해져 가고 있습니다.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부적응에서 오는 현상이라고 하지만 생명을 함부로 다룬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자신뿐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귀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은 참으로 고귀하고 아름다우며 무엇보다도 그분에게는 모두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인 신앙인들입니다. 바로 부활의 자녀들로 하느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가 부활의 삶을 온전히 지향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한 노력들로 각자에게 주어진 아름다운 향기가 은은하고 그윽하게 되어 우리 가운데 멀리 퍼져 나갈 것입니다.